나의 이야기

술 (2010년 9월 6일)

divicom 2010. 9. 6. 09:54

애인에게서 직접 담가 숙성시킨 오디술 세 병을 받았습니다. 하루에 적어도 한 잔씩 꼭 잊지 말고 마시라고 했습니다. 혈압이 낮아 가끔 고생하는 걸 보고 만들어왔나 봅니다. 고마운 마음을 내놓기 쑥스러워 그냥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필 애인이 돌아간 후 헤럴드경제 인터넷판에서 '술 안마시면 일찍 죽는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미국의 스탠퍼드대학과 텍사스 주립대학(오스틴) 연구팀이 최근 '알코올중독: 임상실험연구' 학회보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하루 1~3잔을 마시는 적당량의 음주자(moderate drinker)와 3잔 이상을 즐기는 폭음자(heavy drinker) 그룹의 사망확률이 비음주자(non-drinker) 그룹보다 훨씬 낮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지난 20년 간 55~65세 사이의 노장년층 1,824명을 대상으로 음주와 수명의 상관관계를 조사하여 이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비음주자는 20년 동안 69퍼센트가 사망했지만 폭음자는 59퍼센트, 적당량 음주자는 41퍼센트가 숨졌다는 겁니다.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음주국 대한민국,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이유가 여기 있었나 봅니다. 그렇지 않아도 많이 마시는 사람들이 일찍 죽지 않기 위해, 아니 오래 살기 위해, 얼마나 더 마셔댈지 걱정이 됩니다. 붉은 얼굴, 몽롱한 눈의 노인들이 좀비들처럼 거리를 떠돌아 다니게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과연 이 연구 결과가 변하지 않는 진리일까요? 이 연구가 발표될 때까지만 해도, 폭음은 간과 심장을 해치고 구강암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졌었으니까요.

 

어떤 저명한 연구자도 내 주치의도 내 몸을 나만큼 잘 알진 못합니다. 내가 깨어있는 시간내내 내 몸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내 몸을 생각하는 시간은 하루에 5분도 되지 않을 테니까요. 결국 술에 관한 학설 중 어느 쪽을 따를 것인가 결정하는 것도 각자의 몫입니다. 그 결정에 따르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역시 각 개인의 몫이지요.

 

저는 오늘부터 오디술을 적어도 하루에 한 잔씩 마시겠습니다. 술을 마셔야 일찍 죽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믿어서가 아니고, 제게 오디술을 담가다준 애인의 사랑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저는 사랑이 과학보다 앞선다고, 사랑이 과학보다 오래 간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애인이 없는 사람은 어쩌란 말이냐고요? 자신보다 더 자신을 사랑하는 애인이 없으니, 스스로 자신을 위해 향기로운 술 한 병 준비하면 됩니다. 아직은 포도가 흔하니 검은 포도 몇 송이 사다 술을 담가도 좋고 구멍가게 선반에서 오래된 술 한 병 골라 오는 것도 좋겠지요. 월요일 아침부터 왠 술타령이냐고요? 월요일은 '달의 날.' 달이야말로 가장 좋은 술 친구가 아니겠어요? 자, 그럼 사랑을 위해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