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일기93: 노인의 웃음 (2021년 11월 7일)

divicom 2021. 11. 7. 08:16

형편이 너무도 팍팍하여 웃을 수 없는 노인들이 있습니다.

운좋은 저는 적당히 가난하여 웃을 수가 있습니다.

 

저의 웃음은 흰머리와 함께 늘어가는데

대개는 저 자신을 조롱하는 웃음입니다.

 

집안을 오가며 부딪치는 일이 흔하고

그럴 때면 비명을 지르자 마자 웃게 됩니다.

'십여 년을 산 이 집이 아직도 낯선가?'

웃음이 나옵니다.

 

한 가지 일을 하러 가다가 도중에 다른 일을 발견해

그 일을 하고 애초의 일을 잊는 일도 많습니다.

뭔가 꺼림칙하다는 느낌이 들면 처음 가던 길로 갑니다.

그제야 처음에 하려던 일이 떠오릅니다.

'이봐, 정신차리게!' 저를 꾸짖으며 웃습니다.

 

바닥에 앉아 있다 일어서려면 힘이 듭니다.

'아이구' 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그 소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웃음을 자아냅니다.

 

파스를 붙이고 몇 시간만 지나도 피부가 이상합니다.

아주 작은 알갱이 같은 게 솟고 간지러워 떼내야 합니다. 

'공부에만 때가 있는 게 아니고 파스 붙이는 데도 때가 있군!'

생각하며 웃을 때도 많습니다.

 

파스는 주로 어깨나 손목이 아플 때 붙이는데

붙이면 본래의 고통은 줄지만 파스로 인한 고통이 생겨나니

'에너지 보존 법칙'과 비슷한 '고통 불변의 법칙'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라는 우리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가 봅니다.

 

십일 월 거리를 아플리케 장식처럼 물들이고 있는 은행잎들이

참 아름답습니다. 샛노랗게 물들든 얼룩져 물들든 결국 떨어져

땅으로 돌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은행나무들은

아름다운 노란 잎을 좋아할 것 같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자본주의적 관성을 여전히 발휘하며 부를 키우는 노인도 있고,

해결하지 못한 가난과 싸우느라 피폐한 노년도 있고,

저처럼 운좋게 자신을 조롱하며 늙어가는 사람도 있고...

 

저의 웃음은 오로지 저를 향한 것이지만

그래도 웃음은 늘 미안을 동반합니다.

언제쯤이면 자조가 부끄럽지 않게 될까요?

그때가 오긴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