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산책길
마스크 위 안경에 자꾸 김이 서려
걷다 멈추고 걷다 멈춰야 했습니다.
시야가 흐려지니 걷는 게 영
불편했습니다. 게다가 보도블럭 중엔
잘못 놓인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냥 돌아갈까... 기분이 나빠지려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동쪽에 낮게 뜬 해를 보았습니다.
어제 내린 비 때문일까요
해는 밝은데 젖어 보였습니다.
슬프지만 명랑한 아이나 노인처럼.
가던 길 멈춰 서서 한참 올려다보니
해가 느릿느릿 나뭇가지 사이로 숨었다 나오고
다시 숨었다가 나왔습니다.
숨바꼭질 덕에 김 서린 안경 뒤의 눈과
마스크 속 입이 웃었습니다.
흰색과 검은 색 사이
모든 빛을 끌어안은 듯한 얼굴이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내가 네게 올 때까지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는지 알아?'
오늘도 또
부끄러운 하루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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