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종일 비가 올 거라는 예보를 보고
어머니와 동생을 하루 당겨 만났습니다.
사소한 음식과 얘기를 나누며 하루 치 안녕을
확인한 건 좋았는데, 그만 쓸데없는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나이가 여러 십년 쌓였는데 아직도 괜한 말을 하고
그것을 후회하다니... 혼자 있어도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다, 다짐 다짐했습니다.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하는
옛 시조의 구절은 여전히 유효한데
저도 시나브로 말 많은 시절에 젖었었나 봅니다.
21세기가 어떤 시대인지 한 줄로 정리하는 일은
21세기가 끝나갈 때쯤에야 가능하겠지만
한국의 2020년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왈가왈부’입니다.
둘러보면, 입 가진 사람 모두가 떠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맹위 속에 마스크 착용이
뉴노멀이 되었지만, 왈가왈부는 그치지 않습니다.
가장 시끄러운 곳은 텔레비전 속 세상입니다.
뷔페식당에 진열된 음식들처럼 다양한 천박과 소음이 넘칩니다.
민주 정부 덕에 누리게 된 무제한적 자유 덕에
무지하고 극렬한 사람들이 독재를 외칩니다.
하나를 아는 사람들이 열을 아는 것처럼 행세하고
과거를 지운 얼굴들이 ‘방부제 미모’ 소리를 들으며 설칩니다.
텔레비전 속 세상만큼 시끄러운 곳이 인터넷 세상입니다.
사유를 격려하는 책이나 아름다운 예술작품이 ‘한 줄 평’으로
폄하되는 일이 흔하고, 수준 낮은 물건들이 ‘개성’으로 포장돼
칭찬받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판단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누구나 비평이란 걸 해대면서 ‘틀린 것’은 ‘다른 것’ 대접을 받고
‘다른 것’은 ‘틀린 것’으로 치부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왈가왈부는 본디 모르는 사람들의 특권입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라 해도 알지 못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매체에서 한 말씀하시라고
부추겨도, ‘그건 제 분야가 아니라서’ 혹은 ‘저는 그 일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돈과 명예욕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도 아는 척을 합니다.
게다가 2020년 한국엔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살아있다고
느끼는 ‘관심종자’가 많습니다. 그들이 텔레비전과 인터넷 매체에서
왈가왈부하니 세상은 날로 시끄러워집니다. 그만 떠들라고
코로나19가 왔는데, 오히려 바이러스를 내세워 떠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는 게 없어 텔레비전에도 못 나가고 인터넷도 할 줄 모르지만
‘말로써 말이 많아’ 실수를 저지르고 반성 중인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입을 꼭 닫고 근신하며 책이나 읽어야겠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 이나 <위대한 개츠비> 같은 책을 읽다보면
귀가 절로 닫혀 왈가왈부 따위는 들리지 않고 마음도 잦아들겠지요.
J.D. 샐린저와 스콧 피츠제럴드처럼 잘 위로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지금 제 꼬락서니를 보면 그건 한낱 꿈으로 끝날지 모릅니다.
질끈 묶은 흰머리 꽁지가 더욱 부끄러운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