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8월이 끝나갑니다.
무지와 은사망상으로 무장한 채 세상을 누비는
하룻강아지들로 인해 나라는 바람 앞의 등불 꼴이 되었습니다.
이럴 때 분연히 나서서 어리석음을 꾸짖는
백성의 스승 한 분이 없으니, 그 결핍이 너무나 아픕니다.
아니 어쩌면 스승은 여러 분이되 그분들 모두
‘난세엔 나서지 말라’는 옛 성현의 말씀이나,
‘은거부하구隱居復何求 무언도심장无言道心長’
(은거함에 다시 무엇을 구하려는가? 말없는 가운데 도심이 자라네)
하는 주희의 시구를 실천하고 계신 것인지 모릅니다.
스승들이 그러하실 때 저 같은 질인이 할 일은
그저 제 자신을 들여다보며 뒷걸음질 치지나 않게
경계하는 것이겠지요.
마음은 나아감과 뒷걸음질을 반복하지만
몸은 나이 덕에 나아가고 있음을 땀 덕에 느낍니다.
아무리 더운 날에도 땀 한 방울 흘리지 못해
‘네가 사람이냐?’는 핀잔을 듣던 제가
어느 나이에 들어선 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땀흘리개’가 되었으니까요.
고열에 시달리는 날엔 이불을 겹쳐 덮어도 땀이 나지 않으니
매일 두어 개의 손수건을 적시게 하는 땀이 축복임을 압니다.
게다가 땀이 많이 나면 늘 피부가 젖어 있어
주름살도 좀 덜 생긴다니 그 또한 감사한 일이지요.
언젠가 ‘사람들이 평생 흘리는 눈물의 양은 다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혹시 우리가 평생 흘리는 땀의 양도 다 같을까요?
눈물의 경우, 슬픔이나 분노로 인해 흘리는 눈물의 양과
양파를 썰며 흘리는 눈물이나 안질로 인한 눈물의 양을 다 합해서
계산해야 할까요, 따로 계산해야 할까요?
땀의 경우는 어떨까요? 호르몬이나 체질 변화로 인해 흘리는 땀과
노동으로 흘리는 땀의 양을 합해야 할까요, 따로 달아야 할까요?
땀을 자꾸 흘리다 보면 마음도 가벼워지는 걸까요?
땀흘리개들의 머릿속엔 코흘리개 산수가 무성한 걸까요?
묵언 중인 스승들은 어떠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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