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 공포에 사로잡힌 세계, 세계를 이 지경으로 만든 인류,
탄핵을 피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붉은 얼굴을 바라봅니다.
인류가 마음놓고 자연을 유린하며 살던 시절,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로 이어진
그 수십 년의 '잔치'는 이제 끝났고 그만큼 긴 뒷처리가 남았는데,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오랜만에 집어든 <개선문>에서 조앙은 '잔치'는 끝났다고 얘기합니다.
물론 그 잔치는 지구촌에서 지구인들이 벌인 잔치와는 아주 다른 것이지요.
라비크와 조앙이 주고받는 말을 읽으니 오랜만에 칼바도스가 마시고 싶습니다.
십대의 끝에서 1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개선문>의 작가 에리히 레마르크
(Erich Maria Remarque: 1898-1970). 31세에 전쟁의 본질을 폭로한
<서부전선 이상없다>로 세계적 작가가 된 그.
꽤 오랫동안 그와 함께 아파하고 그로부터 위로받으며 칼바도스를 마셨는데...
"늙고 싶어."
"정말예요?"
"나이를 잔뜩 먹었으면 해."
"아니, 왜요?"
"이 지구가 되어 가는 꼴을 보고 싶어."
"전 나이를 먹고 싶지 않아요."
"당신은 늙지 않을 거요. 생활은 당신의 얼굴을 스쳐 지나갈 걸. 그것뿐이지.
당신 얼굴은 점점 아름다워질 거야. 늙어 가는 것을 느끼지 못할 때 사람은 늙는 법이지."
"그렇지 않아요. 사랑을 하지 않을 때 그렇게 되는 거예요."
라비크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를 버리다니' 하고 그는 생각했다.
'당신과 헤어진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칸느에서 나는 무엇을 생각했던가?'
여자는 그의 품속에서 몸을 곰지락거렸다.
"이제 잔치는 끝났어요. 이제 함께 집으로 돌아가 자기로 해요.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사람이 자신의 한쪽만을 가지고서가 아니라, 전체로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사람이 언저리까지 가득 차서 더는 들어올 것이 없어서 조용하게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워요.
자, 가요. 집으로 돌아가요.(생략)"
--<개선문>, 에리히 레마르크, 홍경호 번역, 범우사,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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