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사과와 사과라는 말과(2020년 2월 12일)

divicom 2020. 2. 12. 09:03

오늘 날짜엔 '2'자가 유독 많습니다.

2020년 2월 12일. 2 2 2 2, 네 개나 되네요.

1이 외롭겠네...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을 들여다보다 혼자 픽! 웃기도 하고

가슴이 뭉클할 때도 있습니다.


숫자, 문자, 이름들... 시작은 편리를 위한 발명품이었을지 몰라도

누군가의 입에서는 시가 되고 누군가의 가슴에선 추억이 됩니다.


오랜 친구가 생전 겪어본 적 없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평생 맛있게 먹던 사과가 친구에게 알러지를 일으켜 먹지 못한다고 합니다.

거의 모든 것이 전도되어가는 세상에서 사과도 문득 모반하고 싶어진 걸까요?


친구 생각을 하며 책꽂이를 보니 <사과와 사과라는 말>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책은 시인들이 만드는 계간 <시평>4호, 2001년 여름호입니다.

그 책에는 여러 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표제작은 이순현 시인의 '사과와 사과라는 말과'입니다.

친구가 알러지에서 놓여나기를, 사과의 모반이 오래 가지 않기를 기원하며 시를 읽습니다.


사과와 사과라는 말과


1


사과라는 말은

-따다.

-먹다.

-깨물다.

-쓰다듬다.

-만지다.

-문지르다.

-벗기다.

-핥다.

-빠개다.

-더듬다.

-빨다...... 등등과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사과라는 말을

발음하는 순간

입 안에 사과로 꽉 찬다


2


과도를 중심에 대고 꾹 누른다

깊숙한 곳에 방이 여러 개 있다

서로 벽으로 막혀 있고

방마다 하나 또는 둘 장치되어 있는

단단하게 여문 시한 폭탄

째깍째깍 시간이 간다


3


사과라는 말과 

사과는

세계가 다르다


그들은

내 입 안에서 만난다

침으로 뒤범벅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