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침 신문을 읽다가 눈앞이 환해졌습니다.
문태준 시인이 경향신문에 연재하는 '詩想과 세상'에서 만난 시,
이재무 시인의 '볕 좋은 날' 덕택입니다.
이 시는 '사랑'이라는 추상명사를 구체적인 풍경으로 보여줍니다.
이 글에는 이재무 시인의 다른 시도 한 편 나와 있는데,
이런 시가 진짜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가 말하듯 고목나무를 비롯해 '나무가 피우는 꽃은 모두가 젊다'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 있는 한 꽃 피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詩想과 세상]볕 좋은 날
볕 좋은 날
사랑하는 이의 발톱을 깎아주리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부은 발등을
부드럽게 매만져 주리
갈퀴처럼 거칠어진 발톱을
알뜰, 살뜰하게 깎다가
뜨락에 내리는 햇살에
잠시 잠깐 눈을 주리
발톱을 깎는 동안
말은 아끼리
눈 들어 그대 이마의 그늘을
그윽하게 바라다보리
볕 좋은 날
사랑하는 이의 근심을 깎아주리
이재무(1958~)
햇살이 환하게 밝은 날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발톱을 깎아주겠다고 시인은 말한다. 고단한 일로 부은 발등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겠다고 말한다. 발톱을 깎다가 사랑하는 이의 이마 그늘도 가만히 바라보겠노라고 말한다.
이 시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발톱과 발등과 이마를 바라보던 눈길이 멀리 “뜨락에 내리는 햇살”로 옮겨가는 데에도 있다. 발톱 깎는 소리만 들릴 법한 고요하고 아늑한 실내의 공간이 은은하게 햇살 내리는 바깥 공간으로 옮겨가는 데에도 있다. 이 조용한 두 공간을 우리의 일상에서도 가끔 발견했으면 좋겠다.
이재무 시인은 58년 개띠이다, 시 ‘58년 개띠를 위한 찬가’에서 이렇게 썼다. “친구여, 노래 한 곡 들으시게나/ 나무가 피우는 꽃은 모두가 젊다네/ 고목이 피운 꽃으로도 벌과 나비는 날아든다네/ 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죽는 그늘처럼/ 우리는 날마다 생의 부활을 살아가세나.” 이 시구는 우리 모두를 위한 찬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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