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 일기 18: 겨울 이불처럼(2019년 12월 4일)

divicom 2019. 12. 4. 07:32

어린 시절 조국에 대해 처음 배운 것은 '삼면이 육지로 둘러싸여 있고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뚜렷이 다르다 보니 한 곳에 살아도 다양한 색깔과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지은 건물들은 다만 낡아가지만 산과 물과 하늘은 계절을 따라 두께와 빛깔이 달라지니까요.


사람들의 자세와 입성도 계절마다 다릅니다.

사람들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큰소리치지만

늘 자연의 영향을 받고 자연을 흉내 냅니다.


쉬임없이 흐르면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시간은 계절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며 묻습니다.

'너희는 어디로 가고 있느냐, 그곳으로 가는 게 맞느냐...'

계절이 동반하는 온갖 변화는 생존비용을 증가시켜 때로 한숨을 자아내지만

그러한 변화가 없었다면 인간의 철학적 수준은 지금보다 훨씬 낮았을 겁니다.


생각보다 활동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겨울은 좋은 친구와 같습니다.

추위는 밖으로 돌던 몸을 방안에 앉혀 못 읽던 책을 읽고 못 듣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합니다.

추위가 긴 러시아에서 음악과 문학이 눈부신 성취를 이룬 건 놀랄 일이 아닙니다. 


활동보다 생각이 많은 노인들에게 겨울은 왕왕 잔인합니다.

여름 가을 옷을 집어넣고 두꺼운 겨울 옷을 꺼내는 사소한 일이 노인에겐 버겁고

이불을 바꾸는 건 더 어렵습니다. 겨울 이불은 대개 더 크고 무거우니까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독거노인들이 두꺼운 이불을 덮는 대신 

두꺼운 옷을 입고 자는 건 두꺼운 이불을 꺼내는 게 힘들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노인의 겨울은 언제나 이불을 바꾸기 전에 찾아옵니다. 제 경우도 그랬습니다.

겨울 이불 꺼내기가 귀찮아서 얇은 이불 위에 또 하나의 얇은 이불을 덮고 잤는데

가장자리로 들어오는 한기가 자꾸 잠을 깨웠습니다. 난방을 많이 하면 해결이 되겠지만

추운 사람 많은 계절에 난방을 많이 하는 건 옳지도 않은데다 경제적 부담도 큽니다.

마침내 이불을 바꿀 것인가, 잠옷 대신 두꺼운 옷을 입고 잘 것인가, 기로에 섰습니다.

두꺼운 옷은 꿈꾸는 데 방해가 되니 힘들어도 두꺼운 이불을 꺼내야겠습니다.


얇은 이불을 걷어내 빨고 겨울 이불 아래 누우니

아기 시절 엄마 품에서 느꼈음직한 푸근함이 몸을 감쌌습니다.

큰 이불을 꺼내어 홑청을 씌우고 이불깃을 다느라 고생했는데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되나 봅니다.


따뜻한 이불 아래 행복한 노인이 되어 새로 다짐합니다.

'겨울 이불 같은 사람이 되자! 누군가의 추위를 더는 사람이 되자!'

사계절이 필요한 건 젊은이만이 아닙니다. 노인에게도 사계절이 곡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