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받은 황금향을 벗깁니다.
과육과 껍질이 아주 한몸이 되어 벗기기가 힘듭니다.
둘이 하나 되어 모두가 반대하는 사랑을 하는 연인 같습니다.
손으로 벗기다 안 되어 칼을 들고 씨름합니다.
껍질이 좀 벗겨지는가 싶더니 엄지손가락 바닥 쪽에 상처가 납니다.
피는 좀 나지만 상처가 깊지는 않습니다.
주부들이 으레 갖게 되는 굳은 살 덕택입니다.
빨간약으로 상처를 씻고 시선을 창밖으로 돌립니다.
4등분해서 철사 옷걸이에 걸어 햇살에 말린 가지가
춤추는 사람들 같습니다. 대보름 즈음에 볶아 먹으면
날 가지로 만든 나물과는 다른 맛이 날 겁니다.
황금향, 엄지손가락, 가지... 모든 사물엔 시간이 배어 있습니다.
어떤 시간은 사랑이 되고 어떤 시간은 굳은 살이나 갑옷이 되고
어떤 시간은 깊은 맛이 됩니다.
시간이 하는 일 중 으뜸은 무엇일까요?
제 몸과 마음에 배인 시간을 생각합니다.
갑옷이 되어도 좋겠지만 사랑이나 그윽한 향기가 되면 더 좋겠습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큰사랑을 갖게 되고 향기로워진다면
아무도 나이드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겁니다.
꼭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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