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신문기자 시절 정치부에 있다가 문화부로 발령이 났습니다.
문화부장은 제게 미술과 학술을 맡기겠다고 했습니다.
그림을 보는 것은 좋아하지만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어떻게 기사를 쓸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일하던 신문사는 영자신문이니 기사도 영어로
써야 하니까요.
교보문고 외국서적 코너로 달려가 미술 관련 영어 원서 몇 권을 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유화를 영어로 'oil' 또는 'oil painting'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감과 붓, 염료의 종류에서부터 미술사조, 화가들, 조각가들부터 미디어 아티스트들까지
벼락치기 공부라도 해야 했습니다.
문화부 미술담당 기자에게는 수없이 많은 전시회 도록이 밀려 들었습니다.
그 중 '진짜' 작품다운 작품을 골라내어 기사화하거나 작가를 인터뷰해야 했습니다.
미술기자로서 처음으로 깊이 있는 인터뷰를 한 대상은 장욱진 선생님이었습니다.
장욱진 선생님에 대해선 전혀 몰랐지만 수많은 도록 중 선생님의 전시회를 알리는 도록을 보니
'이거다!'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시장인 대학로의 두손갤러리에 전화를 하니
그곳의 직원이 "선생님은 기자와 인터뷰하는 걸 싫어하십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기자와 인터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싫어하는 사람 중에
훌륭한 사람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 직원에게 선생님이 언제 화랑에 오시는가 물으니 전시회 개막 하룬가 이틀 전에 오셔서
전시회 준비를 점검하신다고 했습니다. 장욱진 선생님에 관한 책 몇 권과 구할 수 있는 모든
기사를 구해 읽은 후 선생님이 오신다는 날에 화랑으로 갔습니다. 요즘엔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정보를 구할 수 있지만 그때는 책과 신문 기사를 찾아 읽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읽고 나니 선생님을 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화랑에 가니 선생님이 그림을 보고 계셨습니다. 화랑 직원처럼 선생님 옆에 서서
그림을 보다가 문득 여쭈었습니다. "선생님, 요즘도 약주 많이 하셔요?"
선생님은 옆 사람을 보시지도 않고 웃음 섞어 대답하셨습니다. "웬걸, 이제 그렇게 못 먹어요.
의사도 뭐라 하고." 그리고 또 뭔가 여쭈니 또 아무렇지 않게 답변하셨습니다.
그렇게 몇 마디 나누시더니 선생님이 저를 보시고 자신에 대해 어떻게 그리 많이 아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공부했다'고, 어느 신문의 아무개 기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은 환히 웃으시며 저와 자리를 잡고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근 두 시간 동안
제 질문에 답을 주셨습니다.
선생님 기사는 제가 문화부 기자로서 쓴 첫 번째 인터뷰 기사였는데 기사가 나가고 나니
칭찬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원래 미술을 전공했느냐' '그림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아느냐'는
질문도 들었습니다. 기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공부를 하고 기사를 썼을 뿐인데
칭찬과 질투를 받으니 쑥스러웠습니다.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해서 그 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은 누구나 '프로'입니다.
기자도 프로고 바리스타도 프로고 요리사도 프로입니다.
프로는 누구나 자기 일을 잘해야 하고 잘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못할 때는 부끄러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엔 밥벌이하는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물건을 파는 사람에게 그 물건에 대해 질문했을 때 제대로 답하는 사람이 드물고
음식점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그 집에서 파는 음식에 대해 물어서 원하는 답을 듣기도 어렵습니다.
며칠 전엔 명지대 앞 스타벅스에서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그 카페의 영업 초기엔 카페라테를 주문하면 어여쁜 라테아트가 그려진 라테가 나왔습니다.
언젠가는 너무나 맛있고 아름다운 카페라테에 감동해 스타벅스 코리아 홈페이지에
칭찬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때 그 라테를 만들었던 바리스타와는 그게 인연이 되어
지금도 연락하고 지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커피 맛이 바리스타에 따라 들쭉날쭉하더니
라테아트를 하지 못하는 바리스타가 많아졌습니다.
카페라테를 주문하며 '라테아트 해 주세요' 라고 얘기하면
바리스타들이 당황하는 일이 흔합니다. 운이 좋으면 라테아트도 잘하고
커피도 맛있게 만드는 바리스타를 만나지만 그이가 없는 시각에 가면
같은 돈을 내고 맛도 없고 모양도 예쁘지 않은 커피를 마셔야 합니다.
그러면 스타벅스에 가지 말지 뭐하러 가느냐고요?
친구가 거금을 넣어준 스타벅스 카드가 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그곳에서 '카페라테 톨 하나에 원 샷 추가'를 주문하며
라테아트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커피 기계 앞의 바리스타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계산대의 직원이 그들을 향해 제가 주문한 것을 다시 반복하자
그들이 라테아트를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계산대의 직원은
"지금 있는 파트너 중엔 라테아트 하는 사람이 없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전에는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해주던 것을 이젠 왜 아무도 못하나요?"하고 물었고
그이는 "그때 일하던 사람들은 다 그만뒀어요. 이게 쉽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하고
제법 권위있게 말하고는 스태프룸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그의 태도나 어투에서는 눈곱만한 미안함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제게 라테를 만들어 건네준 바리스타는 자신이 라테아트를 할 줄 모르는 것에 대해
매우 미안해 했습니다. 그에게 물었습니다. "아까 그 사람이 점장이에요?" "네."
"그럼 그 사람은 라테아트를 할 줄 알겠네요?" "네."
"그러면 그 사람이 좀 만들어 주면 안 되나요?" "아, 지금 휴게시간이시라서요."
하아, 실소가 나왔습니다. 자신의 휴게시간을 그 정도로 엄격히 지키는 사람이라면,
즉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데 그렇게 엄격한 사람이라면
손님의 권리를 지키는 데도 그만큼 엄격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바리스타라면 라테아트가 있는 카페라테를 만들어 제공하는 게 당연하고
다른 직원들이 다 만들 줄 모르면 점장이든 사장이든 자신이 만들어서
손님에게 제공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오늘의 한국이 퇴행을 거듭하는 건 정부가 잘못하고 정치인들이 잘못해서라고들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건 밥벌이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잘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거나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는 하얗게 셌지만 여전히 밥벌이를 위해 일하는 저 자신부터 돌아봐야겠습니다.
문화부로 발령났던 그때처럼 지금 맡은 일을 잘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그것이야말로 '프로'로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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