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 일기 12: 노년 통증(2019년 10월 6일)

divicom 2019. 10. 6. 18:02

한동안 '해야 하는' 일을 하느라 '하고 싶은' 일을 미뤄 두었습니다.

어제야 오랜만에 '해야 하는' 일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했습니다.

그래봐야 겨우 몇 시간 동안 글을 읽고 쓴 것뿐이지만

그로부터 얻은 기쁨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이 고통을 동반하니 '아!'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오른쪽 어깨가 심하게 아파서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깨 통증은 연락 없이 찾아오는 오랜 친구와 같지만

무거운 물건을 든 것도 아니고 갑자기 힘을 쓴 것도 아니고

그냥 책상 앞에 몇 시간 앉아 있었을 뿐인데 어깨가 심하게 아프니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 고개를 갸웃거리다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늙어간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들과의 만남을 뜻한다는 걸

깜빡 잊고 있었으니까요. 


조용히 빨래를 하던 세탁기가 어느 날 갑자기 서 버리고

불평 한마디 없이 온갖 것을 끌어안고 있던 냉장고가 

어느 순간 작동을 멈추는 것처럼, 우리의 몸 이곳 저곳도 예고 없이

제 기능을 잃거나 멈칫거리거나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걸 

잊고 지냈던 것이지요.


제 몸을 이루는 부품들은 모두 저만큼 오래되었으니

그들 중 어느 것이 문제를 일으켜도 자연스러울 겁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사실을 잊고 사는 게 저 한 사람은 아닙니다.


노인들이 모이면 으레 자랑을 합니다.

자식 자랑, 손주 자랑, 그 다음은 병 자랑입나다.

젊은이들은 주로 '하는'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데 비해

노인들은 주로 건강과 아픔과 병원에 대해 얘기합니다.


모두가 '건강하게 살다가 죽기'를 소망하지만

건강한 사람이 죽는 일은 거의 없으니 누구나 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병이나 통증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은 그 고통을 끝내주는

고마운 친구이겠지요. 


새벽과 황혼을 구별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종일토록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참으로 비극적일 테니까요.


노년에 찾아오는 고통은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 주는

친절한 전령입니다. 육상경기장을 여러 바퀴 도는 달리기 선수를 위해

바퀴 수를 알려 주는 종소리처럼, 네 삶이 막바지이니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미루지 말고 어서 하라고 알려 주는 것이지요.


그러니 몸 어딘가가 아픈 젊은이는 푹 쉬고 나서 삶의 현장으로 복귀하면 되지만

어딘가가 아픈 노인은 이 병원 저 병원을 기웃거리며 병 자랑을 하기보다는 

죽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해야 할 겁니다.  


그 '무엇'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면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깨를 파스로 도배하고 다시 그 '무엇'을 해야겠습니다.

고맙다, 통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