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30년 출판인의 <책꽂이 투쟁기>(2019년 9월 17일)

divicom 2019. 9. 17. 15:45

언젠가 이 블로그에 저는 부모님을 잘 만난 덕에 저보다 나은 형제들을 덤으로 얻었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지난 6월 오빠가 '일석국어학상'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글을 올렸는데, 오늘 또 동생 얘기를 하려니 좀 저어되지만

돈 많다는 자랑이 아니고 책 좋아한다는 자랑이니 부디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학교는 다니지 못했으나 몸으로 직접 배우고 책으로 스스로를 교육하신 아버지 덕에 저희 오남매는 모두 

책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그 중 한 사람 제 남동생의 인터뷰 기사가 한겨레신문에 실렸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맨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관련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희 오남매의 숙제는 책에서 배운 것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겠지요.

'알고서 행하지 못하면 알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30년 출판인의 ‘책꽂이 투쟁기’…“문명 기록 중요성 알리고 싶어”

“23살 대학생 때 처음 출판인이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지금도 책 생각 말고는 어떤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책이 이렇게 재미있는데요! 저는 출판하는 삶이 가장 즐겁습니다.” 9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흥식(62) 서해문집 대표는 문화부 사무실 서가에 꽂힌 책들을 가리키며 “여기도 벽돌책이 많군요”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1989년 출판사 등록을 했으니 올해가 꼭 30년이다. 그는 1천여종의 책을 펴낸 출판사 사장이자 아무도 못 말리는
‘열혈 독자’이자 <징비록>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 등 30여권에 이르는 책을 번역하거나 직접 쓴 저자다. 최근 출간한 <책꽂이 투쟁기>(그림씨)는 언론·출판의 자유가 없던 시절, 책을 사랑하던 아버지의 책꽂이 이야기부터 자신이 
애정하며 모아온 백과사전류에 대한 생각까지 평생에 걸친 그의 독서 편력을 담았다. 체코 프라하, 독일 베를린 등 
외국 헌책방 순례를 다니며 모은 서양 고서 목록과 영화광으로서 동료들과 함께 만들었던 주간 영화비평지 <영화저널>(1992년 창간준비호) 발행과 폐간 이야기 같은 에피소드들도 빼곡하다.

“1960년대 저희 집안에서는 조간신문 4종, 석간신문 2종을 받아 봤어요. 아버지는 ‘좌익인사’라고 할 수 있는 분이셨는데 좌우익 갈등 속에 공부를 엄청 하신 분이셨고 집에는 온갖 책이 꽂혀 있었지요.” 국어학자 김흥수 국민대 명예교수가 그의 형님이고 김흥숙 시인이 누나다. 동생은 김수자 일러스트레이터, 출판 편집자 출신의 김이경 작가다. 책과 함께 자란 다섯 남매는 서로 경쟁하듯 책을 읽어댔다고 한다. 그러던 1972년, 서울을 덮친 홍수 탓에 집이 잠겨 책을 거의 잃었다. 얼마나 아까웠던지, 이번 책에서도 그때의 상실감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정치적 억압이나 시대의 한계로 안타깝게 사라진 책과 언론에 대한 아쉬움은 그를 출판인으로 만든 동력이기도 했다.

“저는 언론·출판이 지닌 시대성과 기록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출판은 시대를 기록하는 언론이고 신문은 하루를 
기록하는 사초이기 때문이지요. 처음 월급을 받아 산 책이 <사상계> 영인본이었습니다. 지금 그 정도 내용의 월간지라면 한달에 1천부 나가기도 힘들 텐데 1950~60년대에 10만부 가까이나 팔려 나갔다는 게 이해가 되시나요? 박정희 군사 쿠데타 이후 사라진 <민족일보>도 또한 극적이에요. 그 신문의 영인본도 80년대 초반 운 좋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전두환 타서전> <친일파 명문장 67선> 같은 ‘역사하는 신문’ 시리즈를 출간한 것도 “원문을 전달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에서 시작했다. 역사에 대한 사후적 해석도 중요하지만 당시 신문 기사나 친일파들이 쓴 글을 독자가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야말로 역사적 ‘팩트’를 만나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정말로 독특하게 탄생한 국민주 신문 <한겨레> 이야기를 이 시리즈에 꼭 넣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경기도 파주 서해문집 출판사엔 사장실이 없다. 그는 “골프를 치지 않고 값비싼 술집 같은 곳도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 대신, 손해를 감수하고도 기꺼이, 잘 팔리지 않을 것이 분명한 책을 낸다. 고향 앞바다인 ‘서해’와 선비들의 글 모음을 뜻하는 ‘문집’을 더해 만든 출판사 이름에서도 보듯, 그는 고전의 현대화 작업에 힘을 쏟아왔다. 2000년부터 발간해온 고전 시리즈 ‘오래된 책방’은 그의 출판 철학과 오랜 신념을 반영한 것이다. 그는 “출판은 ‘장사’와 다르다”고 
여러번 힘주어 말하면서 최근 화제가 된 보수주의 학자들의 책 출간을 맹렬하게 비판했다. 번역이 좋지 않은 책에 
대해서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강한 질타를 서슴지 않았다.

“번역이 좋지 않으면 독자가 책을 멀리하게 됩니다. 몇몇 출판사들은 정말 번역을 잘합니다. 그런 출판사들의 책에 
대한 애정은 정말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이 시대를 기록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도서관에 꽂아도 부끄럽지 않은 책을 내고 싶습니다.”

종이와 잉크, 인간의 노동력이 들어간 책의 ‘물성’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책을 읽는 행위는 디지털 도구를 매개로 한 독서 체험과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탐서가로, 4천여권을 품고 있는 그의 집 책꽂이에는 오래되고 좋은 책이 여럿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영국 <체임버스 백과사전>(1728) 같은 책은 거의 문화유산급이다. 외국의 고서적 거래 사이트나 헌책방 거리 등을 뒤져 20여종의 백과사전을 사 모으는 데 쓴 돈이 1억원을 넘는다고 한다.

“사실 제 꿈이 백과사전 박물관을 만드는 것입니다. 문명을 기록하는 일의 의미를 젊은이들에게 알리고 싶어서요. 
우리가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지만, 지배계층의 독점적인 정보와 기술을 시민에게 전달하지 않았어요. 프랑스 시민사회 계몽을 위해 <백과전서>가 쓰였듯 지식은 시민을 위해 써야 합니다. 저는 지성의 중요성을 믿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공부하고 행동하는 이들을 존경합니다. 그들의 성과물을 배울 수 있기에 오늘도 저는 책을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