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신문을 읽다가 눈이 젖습니다.
스승들이 꼭꼭 숨어버린 어지러운 세상에서 바싹 마른 몸으로
어리석은 후학들을 이끌어주시는 백기완 선생님 얘기를 읽었습니다.
추석 연휴 내내 고열에 시달리셨다니 더 마르셨겠지요.
선생님의 평생 소원인 통일은 왜 이리도 이루어지지 않는 걸까요?
통일을 방해하는 자들은 정녕 누구일까요?
선생님, 그날이 올 때까지 부디 옥체를 보전하소서!
백기완 선생님의 근황을 전해준 경향신문 이중근 논설위원에게 감사하며
그의 글을 옮겨둡니다.
이중근 칼럼]백기완 선생의 마지막 소원
한가위 연휴 내내 고열에 시달린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대거리(인터뷰) 도중 수시로 말을 쉬었다. 인터뷰에 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더니 통일에 대해 묻겠다고 하자 “그렇다면 내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한마디 해야지”라고 말했다. 지난달 “마지막 소원이 있는데, 고향에 가서 어머니를 뵙고 싶어”라고 한 말이 떠올라 청한 인터뷰였다. 9·19 평양공동선언 1주년을 맞아 남북통일의 전망에 대해서도 듣고 싶었다.
“내가 열세 살 때 서울에 온 지 이제 80년이 다 되어가. 마지막으로 고향(황해도 은율)에 가서 어머니를 뵙고 싶어. 늙으신 어머니를 등에 업고 구월산 마루턱을 냅다 뛰면서 소리 지를 거야. 이 못난 백기완이도 효도 한번 한다고. 어머니가 지금껏 살아계시면 110살이 넘었지. (문익환 목사가 1990년대 초 방북했을 때 백 선생 누님에게서 모친이 타계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백 선생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만약 돌아가셨다면 어머니 산소라도 찾아 뵙고 싶어.”
최근 한·미, 한·일 관계의 속살이 드러나면서 동맹이니 우방이니 하는 말에 의문부호가 붙고 있다. 우리가 당연시해온 한반도 정세와 이를 둘러싼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1년 전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5·1경기장 연설을 그 자리에 있던 15만 평양시민은 물론 남북한 주민 모두 가슴 뭉클하게 지켜보았다. 그러나 꼭 1년이 흐른 오늘, 남북은 어떤 행사도 함께 열지 못했다. 통일로 가는 탄탄대로는커녕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일말의 전망도 보여주지 못했다. 실향민의 아들이 남쪽의 대통령이 되었는데 이산가족 상봉 문제 하나 풀리지 않았다.
“허리가 두 동강 난 사람이 그럭저럭 살아가는 격이야. 분단의 고통은 다 잊고 눈앞에 닥친 현실만이 최우선 고통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어. 분단 70년을 보내니 그 현실을 당연시하고 그 안에서 굶어 죽지 말자는 의식이 지배하고 있어. 자그마한 개인적인 손해에는 화를 벌컥 내면서도 공동체를 위협하는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거든. 이걸 식민지 의식이라고 하는 거야.”
문재인 정부 들어 ‘선 평화, 후 통일’이 정책의 기조로 굳어졌다. 통일이라는 말에 더 이상 시민들의 가슴이 뛰지 않는다. 대북 적대 의식을 높여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젊은 세대는 오히려 통일을 부담으로 여긴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통일을 말하지 않는다. 통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닌, 훗날 남북의 이익이 맞아떨어져야 하는 것으로 되어가고 있다. 이런 세태를 질타하며 목놓아 통일을 외치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요즘 통일이 왜 해야 하느냐 이렇게 살면 되지 하는 말을 하는 젊은이들이 더러 있다는 얘기를 들어. 강대국의 이익에 맞게 한반도가 분단되었는데, 그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운명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버렸어. 남쪽과 북쪽이 서로 으르렁거리게 하고, 하나를 둘로 쪼개 경영해야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강대세력의 지배논리에 오염이 된 것이야. 이걸 다 부셔야 해. 결국 나를 살리는 길은 남의 동정이 아니야.” 통일은 누구의 도움으로 이룰 수 없으며, 남북이 한겨레라는 생각으로 정서를 먼저 통일해야 한다는 말이다.
“남북의 두 지도자가 또 만날 텐데, 다음에 만나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 내가 남쪽의 최고지도자네, 북쪽의 지도자네 권세와 돈을 앞세우면 안돼. 분단이 외세에 의해 강요된 체제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확인해야 해. 분단은 우리 민족이 동의한 적이 없는, 허리를 뚝 자른 침략선이라는 그런 선언과 다짐을 하는 만남을 해야 한다 이 말이야.”
“침략선이 존재하는 한 한반도 내 모든 갈등과 대치는 해결할 수 없어. 분단은 원래 주어진 상황이 아니며, 강요된 현실은 현실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해. 이런 분단의 아픔을 아픔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문제야.” 남북이 동시에 그렇게 깨우쳐야 당면 문제와 목표와 해결 방안이 명확해진다는 뜻이다.
“내가 죽기 전에 고향에 가보고 싶다고 한 것은 나 개인의 향수를 충족시키겠다는 게 아니야. 이제 고향 가는 일은 내 나이나 힘의 한계를 넘었어. 고향을 눈앞에 두고 못 가고 죽을 거야. 다만 이 늙은 몸뚱이 갖고도 고향 땅 어머님 무덤이라도 보고 죽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하는 거지.”
백 선생의 여든일곱 여윈 뺨에 그예 눈물 한 줄기가 주르륵 흘렀다. 그리고 목이 메여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이보시오, 이것 하나만은 꼭 밝혀주시오. 이 할아버지 백기완이 눈물로써 이 이야기를 기록한다고.” 이 땅의 그 어떤 책임있는 사람도, 지식인도 말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 외세와 분단의식을 불식해야 한다는 것 -을 드러내는 것이 통일운동가 백기완의 마지막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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