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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 스타이넘과 한국 언론의 문제점(2019년 9월 22일)

divicom 2019. 9. 22. 08:00

2000년 대 초 미국대사관저(Habib House)에서 그이를 처음 보았을 때가 떠오릅니다.

사십대 말이었던 저는 예순여덟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그이를 보며 

내가 저 나이까지 산다면 나도 저이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운'은 외모의 어여쁨만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외모로 흘러나와 안팎이 일치하는 아름다움입니다.


그는 강물처럼 자연스럽고 호수처럼 잔잔하며 아이처럼 천진하고 호기심으로 반짝이되

어머니처럼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입니다.


그때 사인을 해달라는 제 요청에 그이가 "나도 당신 사인을 받고 싶은데 내겐 종이가 없네..."라며 

응했다는 얘기를 전에도 이 블로그에 쓴 적이 있습니다. 제가 사인을 요청했던 어느 누구도 

그이처럼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이가 다시 한국에 왔습니다. 비무장지대(DMZ) 평화운동에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인터넷 기사를 통해 본 그는 팔십 대인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여든이 넘도록 산다면 그이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한국 언론은 그를 모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가 잘못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모릅니다. 그를 대하는 태도에서 오늘날 한국 언론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그에 대한 기사가 매우 적을 뿐만 아니라 그를 다룬 기사조차 턱없이 작습니다.


오늘날 한국 언론이 안고 있는 문제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 중에도 가장 만연한 문제는

소위 '5W와 1H'로 이루어진 육하원칙(who, when, where, what, why & how)이 지켜지지 않아

기사가 오히려 궁금증을 부추긴다는 것과 기사의 문장에 비문이 많다는 것인데,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면을 크게 주어야 할 대상(사건 + 인물)과

작은 기사로 처리해야 할 대상을 판단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기사의 경중을 가리지 못하는 것인데, 이러한 풍조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뭔지 모르고 

무작정 남들을 좇는 동시대인들의 풍조를 반영합니다.  


대단찮은 사람이나 사건에게는 너른 지면을 할애하고 글로리아 스타이넘처럼

역사를 만든 사람에겐 턱없이 작은 지면을 할애하는 언론...

우리 사회의 퇴행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 같아 씁쓸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한국의 어떤 언론도 그를 인터뷰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를 다룬 한국 언론의 태도가 한심하다고 생각하지만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겁니다.

그의 자서전 <My Life on the Road>를 다시 읽으며 한국 언론의 어리석음을 잊어야겠습니다.

그의 문장은 언제나 각성을 주니까요.


P. 55: "I would learn the big difference between protesting other people's rules and making one's own --

between asking and doing." (나는 남들이 만들어놓은 규칙에 대항하는 것과 나 자신의 규칙을 만드는 일, 즉 요구하는 것과 스스로 하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


P. 57: "I began to see that for some, religion was just a form of politics you couldn't criticize.

(나는 어떤 사람들에겐 종교가 정치의 한 가지 형태일뿐이지만 그 정치는 비판할 수 없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P. 137: "Sometimes when I'm in the midst of all this, I can hear my mother saying, "Democracy is just 

something you must do every day, like brushing your teeth."(이런 일들을 겪다 보면 '민주주의는 이 닦는 것처럼 늘 실천해야 하는 거야'라고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들리는 것 같다.)


P.251: "My mother did not have to give up a journey of her own to have a home. Neither do I. Neither do you. (어머니는 집이란 걸 갖기 위해 자신만의 여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도 당신도 그럴 필요가 없다.)

 

아래는 경향신문에 실린 글로리아 스타이넘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그를 '여성운동가'라 부르는데 저는 그가 '사회운동가'라고 생각합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위드 유…우리에겐 서로가 필요합니다”

글·사진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한국 ‘영페미니스트’들 만난 미국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

글로리아 스타이넘 “위드 유…우리에겐 서로가 필요합니다”

나만의 경험이라 생각했던 것
다른 이들도 겪었음을 알아야
말한 만큼 경청, 민주주의 기본


미국의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85·사진)과 한국의 영페미니스트들이 만났다. 스타이넘은 20세기 페미니즘의 대모로 꼽힌다.

남자는 미스터(Mr)로만 불리는데 여자는 미스(Miss·아가씨)와 미세스(Mrs·부인)로 분리된다며 ‘미즈(Ms)’라는 새 호칭을 만들었다. 1972년 창간한 잡지 이름도 ‘미즈’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필요합니다. 나만의 경험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다른 여성들도 겪었음을 아는 게 중요하죠. 문제를 공유하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그는 영페미니스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With you(당신과 함께)’를 강조했다.

20일 서울 중구 명동 한국YWCA연합회 강당에서 열린 대화 주제는 ‘탈코르셋’(여성에게 강요되는 외모 잣대에서 벗어나자는 페미니즘 운동), ‘미러링’(좌우를 바꾸어 보여주는 거울처럼 남성들의 여성혐오 표현을 성별을 바꿔 보여주는 전략) 등이다. 여성들은 페미니즘 운동을 하면서 겪은 어려움을 물었다. 한 참가자는 반페미니즘 흐름을 이야기하면서 이견을 맞닥뜨릴 때 취해야 할 행동에 관해 질문했다.

스타이넘은 “민주주의의 기본은 내가 말하는 만큼 경청하는 것”이라며 경험을 꺼냈다. 그는 “‘미즈’를 펴낼 때 반동성애 등 인권을 침해하는 글이 아니라면 최대한 다양한 의견을 담은 기사를 실으려 했다”며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고의 해결책이 무엇인지 당시엔 모를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경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타이넘은 줄곧 ‘의견이 다르더라도 존중하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연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른 참가자는 탈코르셋 실천을 두고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눈치가 보여 화장을 하게 된다”며 해결책을 구했다. 스타이넘은 “나는 친코르셋”이라며 “일자리에서 여성에게 치마를 입으라고 강요해서는 안되지만 자발적으로 화장하고 치마를 입는 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화장 같은 외모 꾸미기는 선택의 문제라는 취지의 말이다.

스타이넘은 평화운동 실천과 페미니스트 역할을 두고 “여성은 상대방을 포용하는 방식을 제안함으로써 평화를 이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스타이넘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15년 5월 세계 여성평화운동가 30명과 함께 북한에서 비무장지대를 걸어서 넘어오는 위민크로스(Women Cross) 캠페인을 펼쳤다. 지난 19일에는 9·19 평양공동선언 1년을 기념해 열린 경기DMZ포럼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9202110035&code=940100#csidx808752c0e29dca38d7e79395b0bd8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