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일본 치매, 한국 치매(2019년 7월 10일)

divicom 2019. 7. 10. 06:52

우리 사회처럼 '공포 마케팅(fear marketing)'을 즐겨 사용하고

공포 마케팅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사회도 없을 겁니다.


고령자가 늘어나며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누구나 치매에 걸릴 수 있으니 치매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광고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치매를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두엽을 활성화사키는 거라고 합니다.

어려운 책을 읽거나 외국어를 공부해 뇌를 자극하는 것이지요.


아흔 넘은 연세에도 여전히 젊은이들이 쓸 수 없는 글을 쓰고 계신

황경춘 선생님이 최근 자유칼럼에 쓰신 글... 여러 가지 생각을 일으킵니다.

선생님, 부디 오래 건강하셔서 저희를 이끌어주소서.



www.freecolumn.co.kr

정신이 있을 때 치매 대책을

2019.07.04

인간이 신비에 싸인 달에 착륙한 것도 오래전이고, 우주 개발에 지구인의 새로운 희망을 걸고 있는 요즘이지만, 현대 의학이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질병 중 하나가 치매입니다. 얼마 전까지 암(癌)이 인류의 최대 적으로 간주되어, 인간사회에서 두렵고 기피하는 사람이나 상황을 ‘암적 존재’라고 표현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인간의 가장 두려운 질병이라는 자리를 암으로부터 뺏어가는 듯한 느낌마저 주고 있는 것이 치매입니다. 수년 전 일본의 종합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가 일본의 저명한 사회인사 42 명에게 세상을 떠날 때 무슨 병으로 죽는 것을 원하느냐는 좀 색다른 질문을 해 그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일본의 유명한 방사선 암 치료 전문의 곤도 마코토(近藤 誠) 박사였습니다. 그는 답변 설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암환자는 임종 직전까지 의식을 잃는 경우가 없어 인간으로서 귀중한 인지능력을 끝까지 유지합니다. 말기 암이 주는 고통은 현대 의학이 충분히 완화해 줍니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치매를 인지증(認知症)이라 부르고 있는데, 정확한 환자 수는 모르나 노인 10 명 중 한 사람 정도라고 정부나 민간기관이추정하고 있습니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환자 수는 곧 6명에 1명꼴로 증가할 것이라고, 의료관계자는 우려하고 있습니다. 

고령자층 독자가 많은 이 잡지는 이달 7월호에 치매에 관한 특집기사를 실었습니다. 6개의 글 중에서 일본의 치매 권위자로 널리 알려진 하세가와 가즈오(長谷川 和夫) 박사의 수기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하세가와 박사는 일본 병원에서 치매 진단 때 꼭 쓰는 ‘하세가와식 인지증 진단표’ 제작자로서 일본뿐 아니라 외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치매 연구 권위자입니다. 이름, 생년월일, 오늘 날짜 등 아홉 항목으로 된 이 문진표(問診表)는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것을 병원이나 보건소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치매 권위자가 1년 반 전 한 강연회에서 자기 자신이 치매 환자라고 고백하여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의 치매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알츠하이머’형이 아니고, 80대 이후 노인들이 잘 걸리는 특수한 타입의 치매라고, 금년 90세의 하세가와 박사는 수기에서 밝혔습니다.

이 치매의 특징은 오전에는 보통 사람과 다름없이 활동하다가 오후가 되면 서서히 인지기능이 저하하여, 하세가와 박사의 경우 오후 5시경 가장 증세가 나빠져 인지기능이 약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건강한 사람과 다름없는 상태로 돌아오지만, 오후가 되어 외출할 때 문단속을 잘 했는지 걱정이 돼 확인하러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물론 건강한 사람도 이런 경험을 하지만, 박사의 경우에는 이런 일이 한 번이 아니고 여러 번 같은 불안감을 느끼게 되어 짜증이 난다고도 했습니다.

열 살 아래 부인과 단 둘이 살고 있는 하세가와 박사는 부인이 기숙사 사감처럼 간섭하는 것이 싫어, 집 주소와 약 봉지를 매단 지팡이를 짚고 근처 카페에 잘 나간다고 합니다. 어제 한 일을 잘 잊어먹어 일기를 쓸 때 어제 뭘 했는지 부인에게 자주 묻는다고도 했습니다. 조금씩 치매 증세가 진행은 되지만, 하세가와 박사는 지난 1년 반을 이렇게 잘 지내왔다고 하며 마지막에 독자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아침에 멀쩡한 자기가 저녁때가 되면 잊음이 심해지는 자신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경험으로 볼 때, 치매와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선을 그어 구별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나이를 먹고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치매야말로 아직 당해보지 못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완화해 주는 것이 아닐까? 죽기 전에 치매에 걸리는 것은 신이 내려주시는 은총이 아닐까? 1년 반 치매와 사귀어 오다 궁리해 낸 생각입니다.”

이 특집에서 또 하나 알게 된 심각한 사실은, 치매환자 증가로 동결된 일본 국내 재산이 2017년 말 현재 143조 엔(우리나라 돈으로 약 1,570조 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추세가 계속되면 동결되는 금액은 2030년에는 215조엔(약 2,365조 원)에 달할 거라고 한 경제연구소가 발표했다고 합니다. 치매로 진단 확정되면 본인의 은행계좌 사용과 부동산 거래 등 경제 활동은 일절 법으로 금지된다고, 한 국세청 간부가 설명했습니다.

일본의 치매환자 수는 65세 이상 노년인구의 8%에서 10% 사이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비율일 거라고 언론매체가 보도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중앙치매센터에 의하면 2017년도의 치매 인구는 약 72만 명으로 추산되었고, 2050년에는 노인인구의 약 15%인 271만 명이 될 거라고 추산했습니다. 

제 주위에서도 많은 치매환자를 보았습니다. 제 딸아이 하나는 시어머니가 15년째 치매로 요양원에 계셔, 거의 매주 한 번은 가족 중 한 사람이 면회를 갑니다. 최근에는 아들 부부도 알아보지 못해 몹시 상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얼마 전 공영방송에서 치매환자 간병에 관한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의료 전문인 두 사람은 치매환자는 반드시 요양원에서 간병해야 한다는 의견이었지만 일반 가정을 대표하는 두 사람은 집에서 간병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토론회를 보고 저는 치매환자는 본인이나 가족을 위해 꼭 요양원에서 간호해야 한다고 믿게 되어,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알렸습니다. 

이런 모든 결정은 본인이 정상적인 건강상태에 있을 때 해야 법적으로 유효합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는 결정을, 본인이나 가족을 위해 인지능력이 건전할 때 미리 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고 권하고 싶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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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