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오량가구와 달항아리(2018년 6월 2일)

divicom 2018. 6. 2. 11:12

집 안팎에 여러 가지 꽃이 한창입니다. 

이름을 아는 꽃은 이름을 부르며 칭찬하고 이름을 모르는 꽃은 이름을 부르지 않고 칭찬하는데

아무래도 이름을 알고 부를 때 대화의 맛이 납니다. 

물론 꽃의 생각도 그런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이름은 다 사람들이 자기네 편의를 위해 지은 것이니까요.


요즘 한창인 장미와 수국... 이름이 없어도 아름답지만 

장미와 수국이라는 이름이 있어 그들을 부를 수도 있고 그들에 대해 노래할 수도 있습니다.

이름이 필요한 것은 불러줄 사람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름을 지어 놓았는데 너무나 어려워서 부를 수가 없다면 이름을 잘못 지은 것이겠지요.

며칠 전 청와대에서 문화재의 이름 얘기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 일에 대한 경향신문 '여적' 코너에 실린 이기환 논설위원의 글을 옮겨둡니다.


[여적]오량가구와 달항아리

이기환 논설위원

“세벌대기단, 굴도리, 겹처마, 팔작지붕, 오량가구…. 도종환 (문체부) 장관님, 뜻을 한번 설명하실 수 있겠습니까.” 지난 29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 자리에서 청와대 안의 누각(침류각·시유형문화재 103호) 안내판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오량가구’를 검색해 보니 ‘종단면상에 도리가 5줄로 걸리는 가구 형식’이라 했다. ‘도리’는 또 무엇인가. ‘기둥과 기둥 위에 건너 얹어 그 위에 서까래를 놓는 나무’라 했다. ‘세벌대기단’을 찾았다. ‘장대석을 세켜로 쌓아 만든 지반’이었다. 아무리 읽어도 설명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전문용어의 향연이다. 문 대통령은 “시민이 진짜 원하는 정보 대신, 어려운 건축용어만 잔뜩 담았다”고 지적했다.

이참에 국보의 명칭을 되돌아봤다. 예컨대 ‘백자 달항아리’(국보 262·309·310호)의 원래 명칭은 무미건조한 ‘백자대호’(白瓷大壺)였다. 해방 이후 화가 김환기와 미술사학자 최순우 등이 밤하늘에 둥실 떠 있는 보름달 같은 백자라 해서 ‘달항아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2000년대 초까지는 학술적인 이름이 아니라는 이유로 터부시되었다. 하지만 달항아리처럼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정서를 담은 이름이 있을까. 결국 2011년 국보 명칭이 종전의 ‘백자대호’에서 ‘백자 달항아리’로 바뀌었다. 이름 하나 바꿨을 뿐인데 친근하고 서민적인 이미지의 국보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이 밖에 ‘과형병’을 ‘참외모양병’(국보 94호), ‘기린형개향로’를 ‘기린형뚜껑 향로’(65호), ‘표형주자’를 ‘표주박모양 주전자’(116호)로 쉽게 이름 붙인 국보도 있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분황사 모전석탑(30호·벽돌 모양으로 쌓은 돌탑), 철화양류문 통형병(113호·긴 통모양의 병에 붉은 흙으로 버드나무를 그린 청자), 토우장식장경호(195호·흙인형을 붙인 목 긴 항아리) 등의 이름도 알쏭달쏭하다. 혜심고신제서(43호),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 정병(92호),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106호), 십칠사고금통요(148-1호) 등은 이름만으로도 숨막힌다.

물론 문화재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고 이름을 붙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말 나온 김에 ‘문화재 명칭은 중학생의 귀에도 쏙쏙 들어와야 한다’는 윤용이 명지대 석좌교수의 언급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겠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5312106005&code=990201#csidx44afdc2d72249578642a3e9ad4e4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