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2018년 6월 4일)

divicom 2018. 6. 4. 20:10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매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릅니다.

마침 김수종 선배님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에 대한 글을 자유칼럼에 쓰셨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에 가기 전에 김 선배의 칼럼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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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트럼프가 김정은과 만납니다

2018.06.04

뉴욕 맨해튼 섬의 59번가에 프랑스 고성 같은 19층짜리 르네상스 풍의 건물이 있습니다. 1907년 건축한 뉴욕의 사적(史蹟) 중 하나로 등재된 플라자 호텔입니다. 800개의 객실을 가진 이 호텔은 권위와 호화로움을 자랑하는 명품호텔로 세계적 명사들이 묵고 싶어 하는 곳입니다. 1964년 뉴욕 공연 여행을 갔던 비틀스가 이 호텔에 묵었고, 1985년 G-5재무장관들이 이곳에서 달러화 가치를 낮춘 ‘플라자협정’을 이끌어냈던 역사적인 곳입니다.


1960년대 뉴욕에서 자란 한 청년이 동경어린 눈으로 이 건물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보면 볼수록 너무 멋있어 보였기 때문에 청년의 마음속에는 이 호텔을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로부터 20년 후 청년은 이 호텔을 사들여 꿈을 이루었습니다. 청년의 이름은 도널드 트럼프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40대 초반 플라자 호텔을 인수했던 일화는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두각을 드러내던 2016년 1월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습니다. 참모의 체계적 조언이 아니라 거의 자신의 육감에 의존해 플라자 호텔을 인수했는데, 예비선거 운동 스타일이 “거울에 비친 듯이 플라자호텔 거래를 빼닮았다.”고 평가하면서 대통령이 되면 세계적 지도자들과 협상해야 하는데 그런 태도가 먹혀들겠느냐는 다분히 회의적인 분석이었습니다.

맨해튼에 트럼프 타워를 짓고 부동산 개발사업을 펼치던 트럼프는 1988년 플라자호텔이 경매로 나올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그는 호텔 소유주의 대리인에게 전화를 걸어 “30분만 내 방에서 시간을 달라.”고 호소하고 만나자마자 “경매에 내놓지 말고 직접 거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트럼프는 소유주가 원하는 가격 4억1000만 달러에서 250만 달러만 깎고 그 자리에서 구매 약속을 했습니다.


거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는 그 대리인에게 “부동산에 문제가 있거나 고칠 게 있으면 말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대리인은 하자 보수비를 공제하려는 수작인 줄 알고 입을 다물려고 했고, 이에 트럼프는 “이건 계약서에 들어갈 얘기가 아니다. 이 호텔을 일부 콘도미니엄으로 개수하여 입주자에게 팔 생각인데 건물에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떻게 고치는지만 얘기해 달라.”고 어필했습니다.


대리인은 중대한 임대차보호문제를 슬쩍 흘려주었습니다. 80대 독신 할머니가 35년 동안 살고 있는데 월세 500 달러만 내고 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뉴욕에서는 임대차보호 규정에 의해 건물주가 맘대로 임대료를 올려 받을 수도 없고 퇴거시킬 수도 없습니다. 이 노파를 내보내지 않고는 플라자 호텔 개조 작업은 헛일이 되고 말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트럼프가 대리인에게 한 말은 다음의 한마디였습니다. “일주일 안에 내 귀에 그 할머니가 매우 행복해한다는 얘기가 들어오게 하면 그때 거래를 완료하겠소.” 대리인은 절대로 자신의 아파트를 떠날 수 없다는 그 할머니를 설득하여 방을 비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조건은 같은 플라자호텔에 종전 살던 곳보다 10배나 넓은 방에서 죽을 때까지 공짜로 살게 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플라자호텔 거래에서 보여준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은 외부 컨설턴트의 자문 없이 혼자 직감으로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그가 대통령 선거운동을 하면서 컨설턴트와 여론조사 전문가에 별로 의존하지 않았던 것과 비슷합니다. 대통령이 된 후 그런 스타일이 별로 변한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그는 국무장관 교체 같은 정부의 중대사도 즉흥적으로 트위터 문자로 날립니다. 트럼프는 협상을 할 때 상대방이 어떤 협상 상대가 되어주기를 원하는지를 직감으로 파악하고 그렇게 접근해서 일을 성사시킨다는 게 그와 협상을 했던 사람들이 전하는 말입니다. 트럼프가 정말 그렇게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한국에선 오직 문재인 대통령 혼자뿐일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오는 6월 12일 트럼프가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싱가포르에서 만납니다. 플라자호텔 거래처럼 모든 것을 트럼프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평양에 두 번 보내 김정은의 의중을 파악했고, 김정은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워싱턴에 보내 편지를 트럼프에게 전달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읽었습니다. 미국이 북한에게 원하는 것은 CIVD,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북한의 비핵화입니다. 김정은이 미국에 원하는 것은 CIVG, 즉 김정은북한체제 보장입니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때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협상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한번 해보는 농담 정도로 들렸던 그 말이 이제 역사적 회담으로 기록될 찰나에 있습니다. 물론 햄버거 회담은 아니지만. 트럼프는 일단 기분이 좋아 보입니다. 김정은의 서신을 들고 미국을 방문한 김영철을 백악관으로 불러들여 장시간 만났을 뿐 아니라 정성을 들여 배웅까지 한 것을 보면 의외의 일들이 벌어지지 않겠느냐는 예감이 듭니다.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줄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