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을 때는 '아, 네가 이렇게 모르는 게 많구나!' 생각하곤 했는데,
나이 들어가면서는 '아, 내가 아는 것은 얼마나 적은가!' 탄식하는 일이 잦아집니다.
우주를 생각할 때 제가 아는 것은 티끌 한 점만하다고 할까요?
어쩌면 그보다 더 적을지 모릅니다.
대개는 무지를 잊고 편히 살다가 책이나 신문에서 제 무지를 일깨우는 순간을 만납니다.
그럴 땐 너무도 부끄러워 숨고 싶은데, 어제 경향신문을 보다가 바로 그런 순간을 만났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은 알았어도
그 속담이 '하릅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에서 나온 것을 몰랐습니다.
다른 분들은 저보다 낫겠지만 혹시 몰라 아래에 제 무지를 일깨워준 글을 옮겨둡니다.
[속담말ㅆ·미]하릅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하릅, 두습, 세습, 사습, 다습, 여습, 이롭, 여듭, 구릅, 담불. 옛날에 소나 말, 개 등 주요 가축의 나이는 이렇게 별다르게 불렸습니다. 100세 인간은 10년 단위로 희비가 갈마드나 10세 남짓으로 한살이 마치는 가축은 1년 단위로 성장을 가늠했겠지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에서 ‘하룻강아지’로 잘못 쓰이는 ‘하릅강아지’는 생후 1년 된 개입니다. 그런데 하릅강아지는 정말 범 무서운 줄 모를까요? 네, 진짜 무서운 줄 모릅니다.
사냥개는 생후 1년은 돼야 비로소 사냥터에서 제 몫을 할 수 있습니다. 개의 한 살은 사람 나이로 치면 15세 정도로, 그때부터 성견다운 면모를 보이기 시작합니다-사람도 과거에는 16세부터 성인으로 쳤지요. 그리고 이 시기는 사람도 개도 질풍노도 혈기왕성한 ‘청소년기’입니다. 힘과 혈기가 넘쳐나 무엇도 두렵지 않을 때죠. 그래서 곰이나 호랑이 같은 거대 맹수를 사냥하러 갈 때는 바로 이 겁 모르는 1년생 개, 즉 하릅강아지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혈기 넘치고 호랑이를 겪어본 적 없으니 덩치 큰 맹수에게 겁 없이 달려들며 맹렬히 몰아붙일 수 있거든요.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젊은 혈기나 어쭙잖은 실력만 믿고 주제도 모른 채 함부로 실력자에게 덤비거나 철없이 날뛰는 사람을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릅강아지에 비유하게 됩니다.
하릅강아지들은 자신이 가진 것, 아는 것이 최고고 전부인 양 자만합니다. 상대가 가만있으니 이빨 빠진 호랑이쯤으로 얕보고 잽 날려대다 카운터펀치 한 방에 뻗어버립니다. 물 만났다 교만 떨다 임자 제대로 만나 영혼까지 탈탈 털립니다. 무람없이 굴다 큰코다치고 깨갱 합니다. 하룻강아지든 하릅강아지든 피차없이 경험 없는 강아지일 뿐입니다. 지피지기 해보면 세상에 만만한 사람 별로 없습니다. 만만해 보였다면 어쩌면 상대를 잘못 골랐을 것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5212050005&code=990100#csidx4820939c7566ed7878d10db507b5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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