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를 비롯해 텔레비전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외모 비하를 근간으로 사람을 웃기려 하거나 노골적으로 유행어를 만들려는 시도,
큰 목소리로 주의를 끌려는 시도 등이 피로를 가중시키고 분노를 자아내기 때문입니다.
존재 자체로 웃음을 주던 배삼룡 씨, 소리치는 법 없이 세상을 풍자하며
웃음과 생각할 거리를 주던 김형곤 씨, 그분들의 자연스러운 코미디가 그립습니다.
부유해졌으나 웃음은 박해진 이 나라에서 여전히 사람들을 웃기려 애쓰는 코미디언들에겐 미안하지만
한국의 코미디는 심하게 퇴행한 것 같습니다.
뒷걸음질치는 코미디를 아예 낭떠러지로 미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입니다.
김성태 씨는 어제 '드루킹 특검' 도입을 촉구하며 '무기한 노숙 단식'에 들어갔는데,
홍 대표가 그에게 "나라의 진실을 밝히려는 김 원내대표의 충정에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것만 해도 웃기는데 더 웃기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김성태 씨가 '단식'을 시작하자 마자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그의 '건강이 염려되니 그를
24시간 관찰할 수 있게 단식 장소에 카메라를 설치하라'거나 '유투브로 생중계를 해달라'는 청원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 무기한 노숙단식투쟁 장소에 카메라 설치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에는 오늘 아침 7시 현재 17,644명이 지지를 보냈는데, 그 글 내용은 이렇습니다.
"진짜로 노숙하며 단식투쟁하는지 국민들이 항상 지켜 볼 수 있도록 24시 관찰 카메라 설치를 부탁 드립니다.
제 1 야당의 원내대표로 국민들에게 한번 내 뱉은말~ 끝까지 책임 지는 김성태 의원님의 모습을 항상
보고 싶습니다. 의원님~~ 응원 합니다. 남자로 태어나 칼을 뽑았으니~ 끝까지 ~ 가즈아~~!! "
위의 글도 웃기는데, 더 웃기는 게 또 있습니다. 바로 홍준표 대표가 이 글을 보고 보인 반응입니다. 그는 어제 오후 페이스북을 통해 '김 원내대표를 조롱하고 씨씨티비를 설치해 감시하라는 청와대 청원까지 하는 자들은 후안무치하고 오만방자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어제 오후엔 비가 왔다가 우박이 쏟아졌다가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하늘도 이 나라 국민을 웃기는 데 한 몫 했습니다. 정오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에 벼락이 떨어졌다고 하니까요. 벼락을 맞은 건 사저 담장 안쪽 경비초소 옆에 있는 소나무였다고 합니다.
어제는 전 전 대통령이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날입니다. 광주지검 형사1부(부장 이정현)가 그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는데, 그는 작년 4월에 펴낸 회고록에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헬기에서 시민에게 사격하는 것을 목격한 고 조비오 신부가 그렇게 진술한 것을 거짓이라 표현하며 조 신부를 ‘가면 쓴 사탄’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전 전 대통령이 법정에 서는 건 1995년 12·12 군사반란, 5·18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지 23년 만이라고 합니다.
머지 않아 또 벼락이 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어디에 떨어져야 지친 국민들에게 큰웃음을 줄지 하늘이 굽어 살펴 주시길 바랍니다. 코미디는 이왕 망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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