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호주 과학자의 존엄사를 위한 여행(2018년 5월 3일)

divicom 2018. 5. 2. 17:34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게으른 저는 여행이라는 말만 들어도 피로합니다.

여행 중에서도 비행기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 창문을 열 수 없고 원할 때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해서? 

피곤한 현실을 잊고 싶어서?

사람마다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결국은 모두 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이겠지요.


그런데 호주의 최고령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David Goodall)이 하려는 여행은 전혀 다릅니다.

그는 존엄한 죽음을 맞기 위해서 스위스로 떠날 거라고 합니다.

자신의 삶의 질이 저하되는 것을 절감하며 이젠 죽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호주에서는 존엄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구달의 경우에서 보듯 모든 사람이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살 만큼 산 사람들이 죽음을 결심할 때는 본인이 원하는 존엄사를 허용하는 것이 

'완전한 형태의 시민권'을 누리게 하는 것이라는 구달의 생각, 저도 동의합니다.


백세 생신을 지나고 일주일 후에 돌아가신 어머님이 말년에 가장 자주 하신 말씀은 "지루해"였습니다.

저는 어머님의 지루함을 덜어드리지 못했지만, 당사자가 장수를 축복이라고 느끼지 않고 

오히려 형벌처럼 느끼게 된다면, 그래서 그가 삶에서 놓여나고 싶어 한다면, 

그가 놓여날 수 있게 돕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너무 긴 생애를 버거워하는 사람들을 죽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살고 싶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처럼 잔인한 일일 테니까요?


한국은 청소년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인 나라이고, 높은 연령층일수록 자살률이 높은 나라입니다. 

누구는 죽지 못하게 막고 누구는 편히 죽을 수 있게 도울지, 

이제는 정부와 사회가 함께 결정해야 할 시간입니다.

아래는 오늘 경향신문에 실린 관련 기사입니다.  




‘존엄한 죽음 위해’ 지구 반대편 가는 호주 과학자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올해 104세인 호주의 최고령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사진)이 이달 중 특별한 스위스 여행을 떠난다.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구달의 계획이 알려지면서 호주에서 존엄사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고 가디언 등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구달은 스위스 바젤의 한 지원기관에 신청해 조력자살을 시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한 것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 때문이 아니다. ‘삶의 질’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구달은 생태학 연구에 70년 이상을 쏟은 학계 권위자로, 에디스 코완 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해왔다. 90세까지 테니스를 칠 정도로 건강한 삶을 살았다.

구달은 2016년 대학 측이 건강을 이유로 퇴임을 요구하자 이 같은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 102세인 그가 1시간30분 거리의 사무실로 출퇴근하기 위해 버스와 지하철을 4~5번 환승해야 하는 상황이 염려스럽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구달이 이를 “고령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라고 규정하면서 사안은 국제적 논쟁으로 번졌다.

대학 측은 새 사무실을 마련해주겠다며 퇴임 권고를 철회했지만 구달은 오히려 생을 마무리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최근 자택에서 쓰러진 뒤 건강도 급격히 악화됐다. 그는 지난달 4일 생일을 맞아 ABC 방송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 나이까지 살게 된 걸 매우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는 “죽는다는 게 특별히 슬픈 일은 아니다. 진짜 슬픈 것은 죽고 싶은데도 그러지 못하는 것”이라며 노인들이 조력자살권을 포함한 완전한 형태의 시민권을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달이 속한 안락사 지지단체 ‘엑시트 인터내셔널’은 “호주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저명한 시민 중 한 명인 그가 존엄한 죽음을 위해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상황은 비극적”이라며 호주 정부에 존엄사 합법화를 요구했다. 이 단체는 구달의 여행을 위해 1만7000호주달러(약 1372만원)를 모금했다.

존엄사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불법이다. 호주도 빅토리아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에서는 존엄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내년 6월 발효 예정인 빅토리아주 존엄사법도 기대수명 6개월 미만의 불치병 환자에게만 적용된다. 스위스의 경우 의사 조력자살을 금지하고는 있지만 “이기적인 동기에 한해서만 처벌한다”는 단서 조항이 달려 있어 이번 여행이 성사될 수 있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5012135005&code=970100#csidx680da004fee016eb39480fe6207d1a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