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기를 좋아하지 않다 보니 이사도 여행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사 횟수가 재산 증식과 비례한다고 하던 20세기 말이나 부동산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지금이나
저는 특별히 문제가 없는 한 자리 잡은 곳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젯밤 동작구 대방동 밤길을 걷다가 문득 이곳으로 이사오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어제 저녁 7시 대방동 주민센터의 대방학당 인문학아카데미가 개강했습니다.
이 아카데미는 8월까지 10개의 강의를 제공하는데, 저는 그 첫 수업을 맡아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을 90명에 육박하는 대방동민들과 함께 했습니다.
대방동 주민센터 홈페이지에도 안내가 나와 있지만
앞으로 이 아카데미에서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열하일기>
<한비자> <설국>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란 무엇인가>
<미국민중사> <군주론> <뜻으로 본 한국 역사> 강의가 열립니다.
어제 수업에 오신 분들이 그 자리에서 무엇을 얻으셨는지 혹은 잃으셨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저는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적어봅니다.
첫째, 교수를 하지 않길 잘했다.
(여러 사람 앞에서 거의 2시간 동안 혼자 말하는 것... 아무래도 저하곤...)
둘째, 최선의 의도만으로는 최선의 결과를 낳을 수 없으며 철저한 준비만이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준비한 것의 70퍼센트 쯤 전달했을까요?)
셋째, 배우려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이십대에서 팔십대에 이르는 주민들... 그 집중력이 놀라웠습니다.
대방동의 밤공기도 향기로웠지만 그분들의 아름다움이 이사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어제 인문학아카데미의 첫 강의가 열리기까지 물심양면으로 애써주신 대방동 주민센터 여러분과
쌀쌀한 밤길 강의실을 메워주신 대방동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강의 전에도 가끔 이 블로그에 셰익스피어 작품의 몇 구절을 올리곤 했는데
앞으로도 가능하면 몇 구절 더 올릴까 합니다.
4백여 년을 살아남은 문장이라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봄비 듬뿍 내린 덕에 싹들의 움직임도 빨라질 것 같습니다.
이 봄, 우리도 새싹처럼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셰익스피어를 읽으며, 고전을 읽으며, 자라는 것들 사이를 걸으며, 그리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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