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악보 같습니다. 한 마디 살고 나면 잠시 쉬었다 다음 마디로 갑니다.
무수한 음표들, 쉼표들, 되돌이표, 그리고 아주 긴 쉼표...
며칠 남들처럼 살고 나면 찾아오는 쉼표의 하루,
세상 바람에 얼룩진 몸을 고열이 소독합니다.
쉼표의 하루를 살고 나서 외출하면 사람들, 나무들... 모두 달라 보입니다.
저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이 깃들어 있을까요?
문 밖을 나설 때 날리기 시작한 비,
2월 마지막 날의 비가 겨우내 더러워진 세상의 얼굴을
말갛게 씻어주었습니다.
내리막길을 따라 흐르는 땟국물이 누구의 눈물 같았습니다.
아픈 일은 많아도 눈물은 부족한 시대...
이 봄엔 분노의 눈물보다 반성의 눈물, 회한의 눈물,
동병상련의 눈물, 공감의 눈물, 위로의 눈물,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3월 첫새벽, 세상은 아직 바늘비에 젖고 있습니다.
운동화를 신고 숲으로 가고 싶지만 잠든 가족을 깨울 수 있으니
책상 앞에 앉아 어둠 속에 젖고 있을 숲을 생각합니다.
숲이 있어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겠지요?
오늘은 삼일절, 내년이면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난 지 백 년,
이 나라는 진정 독립한 것일까요?
우리는 정말 홀로 설 수 있는 걸까요?
저 비는 누구의 눈물일까요?
아래에 제 한영시집 <숲(Forest)>에 수록된 시 '비'를 옮겨둡니다.
비
비 올 때 숲에 드는 자를 조심하라
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Rain
Beware those who enter the forest in the rain;
they are not afraid of getting w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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