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와 코리아타임스, 두 신문과 저의 인연은 1977년에 시작됐습니다.
학교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선택한 곳이 한국일보사 코리아타임스였습니다.
당시 한국일보사는 독자가 가장 많고 기자다운 기자가 많은 신문사였습니다.
선린상고 졸업으로 정규교육을 마친 장기영 사주는 학벌에 상관 없이 인재를 기용하기 위해
'고졸 이상'이면 누구나 시험을 칠 수 있는 공채 제도를 이 나라 언론사 중 처음으로 도입했습니다.
제가 입사할 때는 3차 시험까지 보았는데 마지막 3차 시험은 사주의 면접이었습니다.
사주가 그런 분이다 보니 한국일보사에 소속된 일곱 개 신문과 잡지엔
언론인 정신(journalist blood)이 충만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전두환 정권 때는 정부의 간섭으로 기사를 마음껏 쓸 수 없었지만
그 후에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쓸 수 있었습니다.
코리아타임스 사회부, 정치부, 문화부에서 만 12년을 보내고 1989년 1월 그곳을 떠났습니다.
'기자' 아닌 '사람'으로서 제 마음을 닦고 싶어서였습니다.
그곳을 떠난 지 40년이 되어가지만 늘 그곳과 그곳에서 일하는 선후배들에 대해 애정을 갖고
한국일보와 코리아타임스를 구독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두 신문의 구독을 중단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두 신문의 구독을 중단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처음은 아닙니다.
한국일보가 신입 기자 모집에 '4년제 대학 졸업'을 명시했을 때도
구독을 중단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미루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한국일보 2면에 실린 새 칼럼니스트 명단이 결심을 도왔습니다.
18명의 사진 중 여성은 단 한 명이었습니다.
장기영 사주는 학벌로 사람을 차별하지도 않았고 여성을 차별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들어가던 해엔 13명의 수습기자 중 5명이 여자였고
1975년 '세계 여성의 해'엔 여기자만 뽑은 적도 있었습니다.
현재 이화학당 이사장인 장명수 선배는 성(性)에 상관 없이 인재를 키운
장 사주 덕에 한국 언론사상 최초로 한국일보 주필과 사장을 역임할 수 있었습니다.
코리아타임스는 제가 한국일보보다 더 애정을 갖고 응원하던 신문이지만
이 신문 또한 칼럼니스트에 관한 한 시간을 거스르는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신문에서 여성의 얼굴을 보기 힘들어 구독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뤄온 이유는 그 신문과의 오랜 인연, 그리고 애정 때문이었습니다.
여자 칼럼니스트가 적다고, 신문에 여자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신문 구독을 중단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에서는 성평등을 위해 인위적 노력을 하는 게 옳으니까요.
오랫동안 저희 집에 한국일보와 코리아타임스를 배달해준 지국에 전화하니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몇 시간 있다가 또 하거나 본사에 연락해 구독을 중단하겠습니다.
두 신문이 시대착오적 뒷걸음질을 그만두고 장 사주 시절처럼 앞서 나가는 날,
그날이 어서 오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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