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을 걷다보면 온갖 택배 상자가 즐비합니다. 남에게서 선물 받은 물건도 있고 스스로 구입해 배달 받은 상품도 있겠지요. 그 비율을 보면 그 사람의 삶까지 짐작할 수 있를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tbs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FM95.1)'에서는 '봄'과 '쇼핑중독'에 대해 생각해보고, Demis Roussos의 'Spring Summer Winter and Fall' 등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습니다.
어제는 봄이 옴을 알리는 절기 '입춘'... 그러나 입춘과 함께 봄이 시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봄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마차처럼 덜컹거리며 힘겹게 도착합니다. 올 듯 말 듯 하지만 결국은 오는 봄, 어쩌면 인류는 그 봄에게서 희망을 배웠을 겁니다. 오늘 방송은 이성부 시인의 시 봄 첫문장으로 출발했습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이성부 선배를 비롯해 먼저 저 세상으로 간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지금 창밖에 내리고 있는 비... 저 세상에서 보낸 편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박혜은 맥스무비 편집장과 함께한 '영화읽기' 말미에는 멘델스존의 '봄의 노래(Spring Song)'를 듣고, 권태현 출판평론가와 함께한 '책방산책' 에서는 이순원 씨의 소설 <사임당>과 미니멀리스트 미쉘이 쓴 <미니멀라이프 아이디어 55>를 읽었습니다. '미니멀리스트(minimalist)'의 사전적 정의는 '되도록 소수의 단순한 요소를 통해 최대 효과를 이루려는 사고방식을 지닌 예술가'라고 하는데, 미쉘이라는 사람이 어떤 예술에 종사하는 예술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권태현 출판평론가의 설명으로는 미국인 남편과 아이 셋을 두고 잡지에 칼럼을 쓰며 일본 요코하마에 산다고 하는데, 책 소개를 듣다 보니 그저 정리를 잘하는 주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방산책' 끝에는 이소라 씨의 'Bye-Bye'를 들었습니다.
'문화가 산책'에서 소개한 소식 중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연극 '하나코' 재공연 소식이 있었습니다. 2015년에 공연됐던 연극 '하나코'는 내일모레부터 19일까지 대학로 공간아울에서 공연됩니다. 할머님들은 자꾸 돌아가시는데 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해 보입니다. 할머님들께 죄송한 마음으로, 남궁옥분 씨가 만들어 부른 '봉선화'를 들었습니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남궁씨에게 감사합니다.
'즐거운 산책...' 끝맺을 때 소개해드린 단어는 '쌓인 눈이 속으로 녹아 스러짐'을 뜻하는 '눈석임'이었고, 마지막
노래는 아다모의 'Tombe la Neige(눈이 내리네)'였습니다. 아래에 '들여다보기'에서 읽어드린 '쇼핑 중독'을
옮겨둡니다.
쇼핑중독
아파트 경비실에 배달된 물건을 찾으러 가니
경비원 아저씨가 상자를 건네며 말합니다.
“502호엔 매일 예닐곱 개씩 택배가 와요. 보내는 곳이 모두
홈쇼핑이나 백화점인 걸 보면 사업하는 게 아니고 쇼핑중독이에요.”
건성으로 응대하고 돌아오는데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저 수다쟁이 아저씨가 우리 집 얘기도 저렇게 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고,
얼굴도 모르는 502호 사람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쇼핑중독은 우울하거나 외로운 사람이 주로 걸리는데,
가족들과의 불화나 집안 문제 등도 쇼핑중독을 부추긴다고 합니다.
문득 우리 집에 배달돼오는 상품들이 떠오릅니다.
우리 식구들도 말 못할 괴로움 때문에 물건을 사들이는 건 아닐까요?
어쩌면 경비원 아저씨는 우리 가족들의 마음을 살펴보라고
제게 남의 집 얘기를 한 건지도 모릅니다.
잠깐이지만 수다쟁이라고 비난했던 게 미안합니다.
엊그제 배달된 사과라도 사과의 뜻으로 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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