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된 지 3일 째 들려온 소식이 한숨을 자아냅니다. 국내 대표적인 서적 도매상 '송인서적'이
1차 부도를 냈는데, 최종 부도 처리될 경우 2천 여개 출판사들이 심한 타격을 입게 될 거라는 겁니다.
그렇지않아도 책을 읽지 않는 한국인들이 대통령 덕에 매일 정치뉴스를 좇고 주말마다 광장에서
시위에 나서다 보니 책 읽을 시간이 더욱 없어졌겠지요.
게다가 정부와 정치인들은 이미 한참 전부터 시민들을 이성적 교양인으로 만들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조종하기 좋은 우중(愚衆)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펴왔습니다. 신문, 방송을 비롯한 대중매체들 또한
정부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혹은 정권의 사랑을 받으려 애쓰는 한편 독자나 청취자, 시청자의 '좋아요'를
추구하는 애완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든 것은 당연합니다. 언제부턴가 책 읽기는 소수 '전문가'들의 직업이
되었고, 사람들은 책을 읽는 대신 그 전문가들이 책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듣거나 그들이 책에 대해 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본래 책은 바다와 같은 것입니다. 바다에서 수평선을 볼 것인가, 파도를 볼 것인가, 물고기를 볼 것인가,
배를 볼 것인가, 물결에 비친 해나 달을 볼 것인가는 보는 사람에 달려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책에서
무엇을 읽어내느냐는 오롯이 독자 개개인의 몫입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절망을
읽어내는 사람이 있고 희망을 읽어내는 사람이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에서는 남이 읽은 책 얘기를 듣고 자신이 읽은 것으로 착각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책을 읽는 사람마저 스스로 판단할 줄 모르는 '우중'의 일부가 되는 것이
놀랄 일이 아닙니다.
서적도매상 송인서적이 무너질 경우 작은 출판사들이 휘청거릴 거라고 합니다. 대형출판사는 도매상으로부터
현금을 받고 책을 주지만 중소형 출판사들은 어음을 받고 책을 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국사회를 축약하는
'대마불사(大馬不死)' 원리가 여기에도 적용되는가 생각하니 착잡합니다.
책은 지나간 시대의 산물이며 디지털시대에는 맞지 않는 퇴물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일 겁니다. 소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나라에서 책을 이렇게 홀대하는
일은 없습니다. 경제규모로는 선진국인 이 나라에서 각종 후진국형 사건이 일어나는 것과 책을 홀대하는 것은
무관하지 않습니다. 10세 이상 시민의 하루 평균 독서시간이 6분에 불과한 나라... '송인서적'의 부도가
이 나라의 부도를 알리는 서막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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