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했습니다. 왜 죽는가, 죽음은 무엇일까, 죽음 후엔 어떻게 될까...
나이가 든다는 건 노화라는 값을 치르고 해묵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죽음에 대해 가졌던 대부분의 질문... 이제 답을 알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흔한 살 젊은이가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나이엔 답을 얻는 긴 과정이 많이 생략돼 있으니까요.
그러나 벳시 데이비스는 죽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진국이라는 건 시민에게 가급적 많은 선택의 여지를 주는 것이지요. 죽음에 대해서조차.
미국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부자일지언정 선진사회는 아니지만, 적어도 캘리포니아는 그런 것 같습니다.
데이비스, 언젠가 반갑게 만납시다!
아래에 데이비스에 관한 서울신문 기사를 옮겨둡니다. 데이비스와 친구들의 웃는 사진은 기사 원문
(http://m.media.daum.net/m/media/world/newsview/20160812173105757)에서 볼 수 있습니다.
데이비스의 이별파티와 같은 파티를 인도 영화 '청원'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그 영화도 꼭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파티의 규칙? 울지 않기" ..유쾌하고 존엄하게 죽다서울신문|입력 16.08.12. 17:31 (수정 16.08.12. 19:01)
미국 캘리포니아 벤투라카운티 오하이 마을에 사는 행위예술가 벳시 데이비스(41)는 지난달 23일(이하 현지시간) 가까운 친구와 친척들 30명을 집으로 초대해 1박2일에 걸쳐 파티를 열었다.
첼로를 켜고 음악을 연주하는가하면, 어떤 이는 하모니카를 불었고, 데이비스가 좋아하는 피자를 함께 먹었고, 칵테일을 마시면서 흥겹게 얘기 나눴고, 영화를 봤다.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어보면서 서로 깔깔대고 즐거워했다.
지난달초 데이비스가 보낸 초대장에는 '이 파티에는 어떤 규칙도 없다. 입고 싶은 옷을 입고 오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되고, 춤추고 싶으면 춤추고, 노래 부르고 싶으면 노래부르면 된다. 즐길 수 있도록 마음을 활짝 열고 오면 될 뿐'이라고 적었다.
대신 '단 하나의 규칙'을 강조했다. 데이비스는 '내 앞에서 절대 울지 않는 것'을 유일한 조건으로 붙였다.
그 파티는 바로 '이별파티' 혹은 '죽을 권리 파티'였다. 데이비스는 2013년 루게릭병(ALS)에 걸린 뒤 몸과 신경이 점점 마비되어져갔다. 의식은 여전히 명료했지만 전동휠체어에 의존한 채 누군가 돌봐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삶이 이어졌다.
그의 선택은 삶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파티의 마지막날인 24일 저녁 무렵 데이비스는 그의 생애 마지막 석양을 물끄러미 본 뒤 친구들과 하나하나 키스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모든 인사를 마친 저녁 6시 45분 마치 피곤해서 잠시 쉬려는 것처럼 조용히 휠체어를 몰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먹었다. 네 시간 뒤 이승의 꿈 같은 여행을 모두 마친 데이비스는 숨을 거두며 또다른 여행을 떠났다.
지난해 말 캘리포니아주에서 사회적 논란 속에 안락사법이 통과됨에 따라 평화롭고 위엄있는, 그러면서도 유쾌하게 준비한 합법적이고 적극적인 안락사였다.
데이비스의 친구인 영화사진작가 닐스 앨퍼트는 뉴욕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그는 11일 데일리메일과 인터뷰에서 "그의 초대에 응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다"면서 "그럼에도 나와 초대를 받은 모든 사람들이 데이비스를 위해 파티에 참석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화가이자 행위예술가로서 데이비스가 우리에게 보여준 마지막 공연이었다"면서 "그 자신에게도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선물하면서 또다른 예술의 세계로 떠났다고 생각한다"고 그를 추억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