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서울대학교는 기득권을 상징하는 집단으로 폄하 또는 경원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는 '국립'대학으로, 국민이 낸 세금 덕에 등록금은 싸고, 캠퍼스는 넓고 시설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기억하고 국민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은혜를 국민에게 돌려주려 애쓰는 서울대생이나 졸업생은 별로 보이지 않고, 우병우, 진경준 등 서울대 출신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는 뉴스의 주인공들만 자주 눈에 띕니다. 게다가 그들의 뒤를 이을 것으로 보이는 재학생들도 적지 않아 보입니다.
지난 22일 자 문화일보(인터넷판)에 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서울대 출신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429명, 행정고시 합격자는 454명으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으며,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외무고시에 합격한 사람도 서울대 출신이 71명으로 2위인 고려대(32명) 출신의 2배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통계는 비서울대생으로서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불안을 가중시켜, 그들로 하여금 서울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인터넷 커뮤니티 ‘스누라이프’ ID를 돈 주고 사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문화일보 김리안 기자의 기사를 보면 "정보의 불균형에 대한 극심한 우려가 빚어낸 새로운 풍속도다. 전문가들은 ‘서울대생끼리만 정보를 주고받는 스누라이프에 들어가면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특별한 정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빚어진 일로 분석하고 있다. 스누라이프 ID는 고시생을 중심으로 22일 현재 5만 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것만 해도 기가 막힌데, 24일자 뉴스1에 실린 기사는 더욱 기가 막힙니다. 서울대 학생증을 암행어사의 마패처럼 생각하는 서울대생들이 심심찮게 발견된다는 기사입니다. 서울대 교정에서 여학생에게 서울대 학생증을 보여주며 데이트하자고 하는 젊은이, 도서관에서 떠드는 사람에게 서울대 학생증을 보이며 조용히 해달라고 하는 학생, 스타벅스에서 서울대 학생증을 보여주며 자리를 비켜달라고 요구하는 남녀...
이런 사실이 SNS에 올려져 서울대생들의 부끄러움과 비서울대생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문득 강남에서
거의 평생 고등학교 교사를 지낸 친구로부터 들은 말이 떠오릅니다. 그는 '성적과 인격은 반비례한다'고 말하고, '성적만 좋으면, 서울대만 가면, 다른 것은 어떻든 상관없다'는 가르침이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고 있다' 개탄했습니다.
매일경제신문이 작년 9월 3일에 보도한 것을 보면, 2015학년도 서울대 신입생(최종 등록 기준) 중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고등학교 출신 학생은 63.29%(2064명)로, 2014학년도 신입생 중 수도권 비중(3304명 중 2014명·61%)보다 더 높아졌고, 서울 지역 입학생이 전체의 40%(1306명)였는데 그중에서도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출신이 432명이나 되어 3명 중 1명 꼴이었다고 합니다. 그 전 해 서울 지역 내 강남 3구 비중이 28.7%였으니 쏠림 현상이 더 심해졌다는 것이지요. 특히 정시전형 입학생 중에서는 강남 3구 입학생이 52.2%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옳은 말은 누가 하든 옳고 틀린 말은 누가 하든 틀린 것입니다. 말에 무게를 싣기 위해 혹은 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서울대 학생증을 보여준다는 건, 말하는 젊은이가 이미 젊은이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서울대 학생증 없이는 자신의 말이 상대에게 유의미하게 전달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서울대라는 '권위있는 이름' 없이는 자신의 뜻을 전달할 자신이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은 이미 늙은 사람이니까요. 이런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울대를 졸업하겠지요. 그리고 검사나 부자의 사위처럼 서울대 학생증을 대신할 정체를 추구하고 결국 그렇게 되겠지요. 그리고 평생 영달을 꾀하겠지요.
서울대가 우스운 집단이 되는 건 상관없지만, 서울대 출신 '괴물'의 양산에 국민의 세금이 쓰이는 건 막아야 합니다. 서울대의 등록금을 사립대 수준으로 올리고, 가난한 학생만을 위한 장학금을 확대해야 합니다. 서울대에서 싼 등록금으로 공부한 사람은 졸업 후 일정기간 동안 '공공 선'에 기여하는 일자리에서 일하도록 의무화해야 합니다.
저도 한때 서울대에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려운 집안에서 대학을 가려니 등록금이 싼 곳을 가려 했던 것이지요. 서울대에 가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시험공부는 하지 않아 입학시험에서 떨어졌지만, 낙방이 슬픔을 주진 않았습니다. 시험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떨어진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때 떨어진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제 얕은 인격으로 서울대를 다녔으면 저도 서울대 학생증이나 졸업 사실을 암행어사 마패처럼 휘둘렀을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았다면 수많은 서울대 '괴물'들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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