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김탁환 소설 <거짓말이다>(2016년 8월 3일)

divicom 2016. 8. 3. 08:00

기억력이 형편없는 저도 잊지 못하는 날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영영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날은 바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해 수많은 사람이 수장된 날입니다. 구할 수 없어 구하지 못했다면 

잊었을 텐데, 구할 수 있었는데 구하지 못한 게 분하고 안타까워 잊지 못합니다. 


소설 <나, 황진이>로 저를 감동시켰던 작가 김탁환 씨가 소설 <거짓말이다>로 세월호사건을 기록했습니다. 

이런 동행이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요... 아래는 지난 7월 말 한국일보에 실렸던 김탁환 씨 인터뷰입니다. 

기사 첫머리에 나오는 김관홍 잠수사는 6월 17일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기사 원문은 아래 주소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www.hankookilbo.com/v/f73be20e0df14aa1b74705cffc04fec2


"아이들 안고 나온 잠수사들 이야기...전부 사실입니다"

김탁환 장편 ‘거짓말이다’ 세월호 참사 다뤄


지난달 17일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에 참가했던 민간잠수사 김관홍씨가 경기 고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평소처럼 대리운전 일을 마치고 귀가해 비닐하우스 안에서 술을 마시던 김씨는 새벽 4시경 바닥에 쓰러졌고 이를 가족들이 발견해 신고했다. 경찰은 그가 죽음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지인에게 보낸 점 등으로 미루어 그의 사망을 자살로 결론 내렸다.

김씨는 왜 21년 간 했던 잠수일을 때려 치우고 대리운전을 시작했을까. 광화문 광장과 단원고 교실을 오가며 진상규명에 목소리를 높이던 그는 왜 세 자녀를 등지고 자살을 택했을까. 2014년 4월 16일 이후, 그 바다에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김탁환 작가의 신작소설 ‘거짓말이다’(북스피어)는 김관홍 잠수사를 주인공으로 쓴 세월호 이야기다. 27일 한국일보와 만난 작가는 “등장인물은 모두 실존인물이고 소설 속 이야기도 전부 사실”이라며 “이렇게 르포에 가까운 소설을 쓴 건 작가생활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작가가 김관홍 잠수사를 만난 건 올해 3월 팟캐스트 ‘4ㆍ16의 목소리’를 통해서다. 사회자로 참여해달라는 말을 덥석 받아들인 것은 갈수록 커지는 갈증 때문이었다. 참사 이후 문학으로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문인들의 행렬에 작가도 동참했다. 소설 ‘목격자들’은 조선 시대 전국의 조운선이 동시에 침몰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그 뒤에 숨겨진 음모를 파헤치는 내용이다. 그러나 쓰고 난 뒤 작가는 “더 허탈해졌다”고 한다. “그날 이후 세월호를 적시하지는 않지만 알고 보니 세월호 이야기더라 하는 작품이 많이 나왔죠. 예술가들이 그런 식으로 많이 써요. 사건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빙빙 도는 거죠. 그럼 자긴 다치지 않거든요. 쓰고 보니 나도 그랬구나 싶었어요. 무엇보다 소설에선 나쁜 놈들 다 때려잡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 답답했어요. 이 사건에 더 가까이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가족들이 주로 출연한 팟캐스트는 작가에게 사실에 대한 갈증을 채워줬다. 그러나 여전히 소설로 쓰기를 망설이던 그를 결정적으로 움직인 게 김관홍이다. 연륜의 잠수사답게 그는 2014년 4월 21일부터 7월 10일까지 맹골수도에서 벌인 선체 수색 및 실종자 수습의 정황을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소설가로서 그가 가진 팩트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아직 배가 인양되기 전이니 선체의 내부를 실제로 본 건 잠수사들뿐이잖아요. 미로 같은 선체로 진입해 수많은 이물을 헤치고 아이들을 안고 나온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껏 전혀 알려진 바가 없어요.”

소설은 민간 잠수사 나경수가 선배 잠수사 류창대의 무죄를 호소하기 위해 쓴 탄원서로 시작된다. 실제 있었던 일로, 2014년 작업 도중 잠수사 한 명이 사망하자 해경이 업무상 과실치사로 가장 연장자인 공우영 잠수사를 기소한 사건이다. 원망과 한탄을 꾹꾹 눌러 담은 탄원서는 석 달 간 맹골수도에서 분투한 민간잠수사들의 이야기로 옮아간다. “내려와달라”는 말에 앞뒤 재지 않고 내려간 그들은 배에 의사 한 명 없는 위험한 환경에서 하루에 두 세 번씩 잠수하며 시신을 인양했다. 급류에 휩쓸리지 않고 시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슴과 가슴을 맞댄 채 끌어 안고 이동하는 장면에 이르면 차라리 허구이기를 바라게 된다.

‘“찾았습니다.” “찾았어?” “네. 방금…침대에…실타래…” 말들이 엉켰고 류 잠수사가 끼어들었습니다. “경수야! 야, 인마!” 제 이름을 고함치듯 부르더군요. 그 소리에 눈물이 뚝 멈췄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이 새끼야! 뒈지기 싫으면 뚝 그쳐. 자신 없으면 위치만 확인하고 나와.”’

잠수사들은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경직된 학생들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정성 들여 어르고 달래면 거짓말처럼 굳은 손가락이 풀린다. 어디까지 소설이냐는 질문에 작가는 “전부 사실”이라고 답했다. “잠수사들이 본 걸 있는 그대로 쓰면 공포물이 될 것 같았어요. 그럼 소설의 목적에 어긋나니까 열 배 정도 희석해서 쓴 겁니다. 배 안에 온전한 시신만 있었겠습니까. 잠수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죽은 아이가 나를 도와줘서 거기서 나올 수 있었다는 겁니다.”

목숨을 건 수습 작업은 2014년 7월 9일 해산하라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의 문자 메시지 하나로 허망하게 종료된다. 뿔뿔이 흩어진 잠수사들은 무리한 작업 때문에 잠수병에 걸려 생계가 끊기고, 얼마 뒤부턴 치료비마저 끊겨 자비로 병원을 다니는 생활을 이어간다. “민간잠수사들이 시신 한 구에 500만원을 받았다더라”는 수군거림을 뒤로 하고 나경수는 광화문에서 유가족들과 합류해 진상규명을 부르짖는다.

소설은 2016년 7월, 나경수와 유가족이 함께 맹골수도를 바라보며 미수습자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끝난다. 작가는 6월 4일 김관홍 잠수사를 만나 결말을 들려줬고 김씨로부터 다음 달에 같이 가자는 답을 들었다. 그리고 약 2주 후 그의 자살 소식이 들려왔다.

주변에 머물지 않고 너무 가까이 간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조용히 웃기만 했다. “후회하진 않아요.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생애적 사건’이 있다고 하는데, 저에겐 세월호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건국 이래 처음으로 피해자들이 조직을 만들어 움직인 사건”이라고 불렀다.

“대형 재난에 정부의 대처는 늘 보상을 통해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 거였죠. 그런데 이번엔 그게 안됐습니다. 이 사람들이 원하는 건 책임자 처벌과 진상 규명이에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할 것은 사건을 기억하는 것뿐 아니라 당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왜곡 없이 기억하는 일입니다.”

8월 5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은평문화예술회관 숲속극장에서는 고 김관홍 잠수사를 추모하는 모임 ‘포옹하는 인간’이 열린다. 김탁환 작가를 비롯해 박주민 의원, 황병주 잠수사, 함성호 시인 등이 참석해 김씨의 삶을 기릴 예정이다. 문의 4ㆍ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416network@gmail.com).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