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이화대학 사태가 보여주는 것(2016년 8월 5일)

divicom 2016. 8. 5. 08:33

최근 이화대학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는 이 나라의 천박한 교육정책과 시행 행태를 낱낱이 보여줍니다. 

마침 임철순 선배가 이 문제를 다룬 글을 자유칼럼에 쓰셨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제 생각도 임 선배의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한 가지에 관해서만은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임 선배는 학생들의 총장 퇴임 요구가 지나치다고 하시지만 저는 그 요구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정에 경찰을 불러들인 행위만으로도 총장은 축출되어 마땅합니다. 1970년대 학생들이 유신독재와

싸울 때조차 경찰은 교정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때 시위 학생들 앞에 서서 학생들과

학교를 보호하던 김옥길 총장과 교수들이 생각납니다.


이 글에 인용된 소녀시대의 노래 가사에 잘못된 곳이 있다고 합니다. 정확한 가사를 알고 싶은 분은

유투브에서 소녀시대의 노래를 직접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 중엔 잘못된 것이 많습니다.

인터넷 덕에 정보를 얻기는 쉬워졌지만 정확한 정보를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글을 쓰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습니다.




www.freecolumn.co.kr

이대 학생들이 생각하게 해준 것

2016.08.05


이화여대가 추진하던 미래라이프대학의 철회과정은 우리 교육정책과 대학행정, 학내 민주주의와 시위문화를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한마디로 교육부는 대학을 우습게 알고, 대학은 학생들을 가벼이 여기다가 망신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미래라이프대는 ‘평생교육 단과대(평단)’ 재정지원 사업의 일환인데, 학생들은 학교가 ‘학위 장사’를 하려 한다고 반발했습니다. ‘130년 이화역사 30억과 맞바꿀 수 없다’는 구호에 그들의 마음이 잘 담겨 있습니다.

교육부 평단사업은 고교를 졸업하고 취업한 직장인이나 30세 이상 무직 성인이 4년제 대학 학위를 취득할 수 있게 이른바 선 취업ㆍ후 진학을 장려하기 위한 것입니다. 선정된 대학은 연간 30억원을 지원받는데, 7월 15일에 선정된 이화여대는 미디어 콘텐츠를 기획ㆍ제작하는 뉴미디어산업 전공과, 건강ㆍ영양ㆍ패션을 다루는 웰니스산업 전공을 운영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 사업이 평생학습자들을 대상으로 이미 1984년부터 운영해온 글로벌미래평생교육원과 중복된다는 점에서 정부 돈을 받아서 학위를 파는 행위와 같고, 그나마 학내 의견 수렴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화여대는 3월에 인문학과 타 전공을 융합하는 코어사업(대학 인문역량 강화) 대학에 선정돼 3년간 96억 원을 확보한 데 이어, 5월엔 앞의 사업과 취지가 상반돼 보이는 프라임사업(산업연계교육활성화 선도대학)에도 뽑혀 미래 여성공학 인재양성 등을 목표로 4개 학부 9개 전공을 신설ㆍ재편하는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대학가에서는 이대를 ‘재정지원사업 3관왕’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이화여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을 둘러싼 학내 분규가 중대한 사회적 문제로 번진 것은 교육부가 대학의 구조조정과 학제 재편을 압박하면서 대학사회 전반에 누적됐던 불만이 터져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문탐구 기능과 거리가 먼 정책을 잇달아 도입한다는 점에서 불만이 쌓여왔던 것입니다.

근본 원인은 교육부가 돈을 내세워 대학을 통제하고 대학은 정부정책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해온 점입니다. 정부는 대학에, 대학은 구성원들에게 일방적 순응을 요구해온 비민주성이 이화여대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1년 전부터 준비해도 부족한 게 많을 텐데 7월에 대학을 선정하고 다음 학기부터 학생들을 모집하라니 이런 졸속이 어디 있습니까.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자 대학 측이 경찰을 불러들인 것은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대학의 자율과 자치를 지키기 위해 그동안 우리의 대학과 교수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워왔는지 모르는,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런 터에 누가 경찰에 신고했는지 진실공방을 벌이는 것은 더 우습고 구차스럽습니다.

이대생들은 이번에 새로운 민주시위의 양태를 보여주었습니다. 교내 온라인 커뮤니티 ‘이화이언’을 통해 토론을 거친 뒤 본관 점거농성을 시작하면서 학생증 등 신분을 확인해 보라색 스티커(나중엔 초록 손목 띠로 바뀜)와 마스크를 받은 사람만 들어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외부 개입을 철저히 차단했습니다.

특별한 대표자가 없고 총학생회가 주도하는 것도 아니며 앉아서 ‘독서 시위’를 하고 서로 선배 후배가 아니라 벗님이라고 온라인 용어로 부르는 것도 새로운 변화입니다. SNS를 통한 토론 등으로 의사결정이 늦어 ‘달팽이 민주주의’라는 말도 들었지만, 이대생들의 시위 양태는 신선하고 색다릅니다.

학생들은 경찰과 대치할 때 걸그룹 소녀시대의 노래 ‘다만세’(다시 만난 세상)를 불렀습니다.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만 눈앞에 선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라면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변치 않을 사랑으로 지켜줘 상처 입은 내 마음까지”,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 속을 나는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이런 가냘픈 곡조의 노래가 어떻게 '운동가요'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학생들은 노래로 경찰에 맞섰습니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미래라이프대학 신설은 돈을 향한 혁신이다. 우리는 미래를 향한 혁신을 원한다”고 외쳐 대학 신설을 백지화시켰습니다. 대학이 사업 철회를 약속한 뒤에도 계속되고 있는 농성의 초점은 총장 사퇴입니다. 그러나 직접선거가 아니었다 해도 대학 스스로 뽑은 총장을 물러가라고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총장 사퇴는 사실 이 문제에서 본질적이고 중대한 초점이 아닙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우선 교육부와 대학의 관계에서 지원-자율의 규범과 기준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해방 이후의 숙제입니다. 돈으로 대학을 길들이는 프로젝트형 사업을 지양하고, 교부금 형태로 예산을 지원해 자율적으로 쓰게 한 뒤 나중에 감사를 하도록 지원방식을 바꾸는 게 좋겠습니다. 또 하나는 학문 탐구라는 대학의 기존 목표와 기능인 양성이라는 미래 가치를 조화롭게 수용하는 제도를 모색하는 것입니다. 산업사회의 새로운 요구와 실업이 심각한 사회현상을 고려해 학문과 현실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면 ‘미래라이프대학’이라는 말 자체도 나는 우습고 듣기 싫습니다. 말이 싫으면 그 말에 관련된 일도 싫어지게 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