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있다지만 믿기 힘든 일입니다. 십대의 끝에서 '결국 죽는 것 아닌가, 늙기를 기다렸다 죽을 필요가 있는가, 왜 생로병사의 긴 과정을 겪은 후에 죽는단 말인가, 지금 죽자!' 하고 한강에 갔던 저는 운명 덕에 살아남았지만, 살아가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힘겹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가능한 한 '죽는 날까지 살자'고 생각합니다. 제가 자발적으로 죽음에게 갔을 때 남은 사람들이 짊어질 물음표와 배신감, 슬픔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 나라에서는 마흔 명 넘는 사람이 스스로 이 세상을 등집니다. 존재론적 고민의 결과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보다는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모든 자살은 타살'이라는 말도 있지만, 특히
2016년 6월 한국의 자살은 99.9퍼센트 타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음은 물론 자살에 대해 말하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문제 속에 답이 있는데 문제를 젖혀두니 어떻게 답을
찾겠습니까?
마침 한국일보의 고재학 논설위원이 이 문제를 다룬 글을 '메아리' 칼럼에 썼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죽고 싶은 분들, 부디 죽지 마세요. 우리를 자살로 모는 힘에 복수하는 길은 죽어라 살아내는 것입니다.
자살, 이제 말해야 한다
견습기자 시절인 1989년 가을 어느 날 오후. 서울 신정경찰서(현 양천경찰서) 형사계 한쪽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따르르릉~.” 검은색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젊은 여자가 죽었다는 신고였다. 선배에게 보고했다. 무조건 현장에 따라가란다. 출동하는 형사기동대 차량에 같이 올라탔다. 신월동 한 다가구주택 부엌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고생이 목을 매 숨져 있었다. 정황상 자살 가능성이 높았다. 한데 유서가 없고 동기도 불분명했다. 검사 지휘에 따라 부검이 이뤄졌다. 타살 근거는 없었다. 당시엔 자살이 드물어 주목했으나 시쳇말로 얘기가 안됐다. 그리고 잊었다. 자살은 나와 무관한 딴 세상 일이었다.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에 사는 세 모녀가 번개탄을 피워 세상을 등졌다. 아빠는 12년 전 빚만 남긴 채 암으로 숨졌다. 병을 앓는 큰 딸은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고 둘째 딸은 알바를 전전했다. 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책임진 엄마는 팔을 다쳐 일을 못하게 됐다. 아무리 둘러봐도 도움을 청할 데가 없었다. 살아갈 희망이 안 보였다. 집 주인에게 전 재산 70만원과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 세 모녀는 자살을 우리의 문제로 각인시켰다.
한국은 IMF를 거치며 자살자가 늘기 시작했다. 1990년 인구 10만명당 7.6명이던 자살자는 IMF 직후인 2001년 14.4명을 거쳐 2011년에는 31.7명으로 4배 이상 치솟았다. OECD 회원국 중 11년째 자살률 1위다. 노인 빈민 등 사회적 약자는 물론 청소년ㆍ청년 자살도 급증세다. OECD 회원국들은 지난 10년간 청소년 자살률이 15.6% 감소한 반면 한국은 47%나 늘었다. 입시ㆍ취업 경쟁에 내몰린 젊은이들이 안간힘을 쓰다 절망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승자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는 경쟁지상주의의 비극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은 “결국 모든 자살은 타살”이라고 했다. 그는 자살을 개인적 원인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사회적 현상으로 봤다. 사회적 유대감ㆍ결속력의 약화, 경제위기 등 사회적 불안정과 급격한 구조 변화가 자살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한국 현실에 그대로 적용되는 분석이다. 허술한 사회안전망 속에서 IMF에 따른 대량 해직이 가족 등 공동체를 와해시키고 개인을 절망으로 내몰아 자살이 급증했으니 말이다.
자살을 야기하는 사회통합의 약화는 더욱 가속화할 분위기다. 인력 구조조정과 경쟁구조의 심화, 소득불평등의 확대가 지속되는 탓이다. 최근 불거진 자살보험금 지급 논란은 더욱 걱정스럽다. 국내 보험사들은 2001년부터 10년 동안 자살도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특약의 보험상품을 280만 건이나 팔았다. 자살은 재해가 아니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다가 소송에서 패해 당장 지급해야 할 보험금만 약 3,000건에 2,500억원이다.
오늘도 40명 넘게 목숨을 끊을 것이다. 연간 1만5,000명. 1명이 자살로 숨지면 자살 시도자는 20~40명에 달한다. 매년 30만~60만명이 자살을 시도하는 셈이다. 실제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에 실려오는 사람만 연간 4만명이다. 자살 유가족은 일반인보다 자살을 시도할 확률이 6배나 높다. 1명이 자살을 시도하면 불안 우울증 등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는 주변 사람이 최소 6명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연간 180만~360만명이 자살 피해자인 셈이다. 280만 건의 자살보험 가입이 예사롭지 않게 여겨지는 까닭이다.
자살은 일상이 됐다. 그래서인지 다들 무덤덤하다. 금기시하고 쉬쉬한다. 솔직히 죽은 자들을 언급하는 일은 몹시 불편하다. 그래도 이제 자살을 말해야 한다. 자살은 사회적 질병이다. 복지정책과 심리상담으로 예방이 가능하다. OECD 회원국들은 최근 20년간 예방 프로그램을 통해 자살률을 평균 20%, 핀란드는 50%나 줄였다. 최근 10년간 한국의 자살자 수는 약 15만명. 9년간 이어진 이라크전쟁 사망자 수(3만9,000명)의 4배다. 그들은 결코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 이웃이고 가족이다. 더 이상 자살을 외면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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