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지하철역 파우더룸 유감(2016년 5월 7일)

divicom 2016. 5. 7. 08:36

지하철의 흔들리는 인파 속에서 십대 소녀로 보이는 사람이 화장을 합니다.

분이나 입술 연지를 살짝 덧바르는 정도가 아닙니다. 한 손에는 온갖 색깔의 화장품이 담긴 파렛트를 들고 

다른 손으로 붓을 움직여 본격적으로 '색조 화장'을 합니다. 기차가 흔들릴 때마다 옆에 서 있는 승객들과

그의 몸이 부딪치지만 신경 쓰지 않습니다. 


화장이 끝나고 나니 그는 제법 나이들어 보입니다.

그는 만족한 얼굴로 거울 속의 자신을 한껏 들여다봅니다. 화장이 잘 됐는지 확인하는 듯 

여러 가지 표정을 지어보더니 파렛트를 넣고 핸드폰을 꺼냅니다. 

그의 통화는 화장만큼이나 오래 지속됩니다.


화장은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사적인 행위이니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해야 하지만

요즘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화장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분이나 연지를 바르는 건 물론이고

속눈썹에 마스카라를 칠하거나 눈 아래 위에 아이라인을 그려넣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갑자기 버스나 지하철이 멈춰 마스카라나 연필이 눈을 찌르기라고 하면 어쩌나 저 혼자 가슴을

졸일 때도 있습니다.


사는 게 바빠서 그렇다, 집에서 화장하고 나올 시간이 없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화장하는 것이니

봐줘야한다... 그러나 화장은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화장할 시간이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서울 살이의 속도가 빠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적 장소에서 사적 행위를 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적인 장소에서 사적 행위를 하는 건 ()과 사()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공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부패하기 쉽습니다.

그깟 화장 때문에 사회가 부패한다니 말이 되느냐 하지만 '한 가지 일을 보면 열 가지 일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 만사는 어느 것 한 가지 동떨어진 것이 없어 사소해 보이는 일이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얼마 전 보도된 ‘2016 아시아·태평양국가 부패인식 보고서를 보면한국의 부패지수는 6.17로

1.67을 기록한 싱가포르나 3을 기록한 일본보다 훨씬 부패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부끄러운 지수가 앞으로 더 높아질 것 같습니다.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여성이 많아지자 지하철역에 파우더룸을 설치한다고 합니다.

지하철역엔 이미 '화장실(粧室)' 즉 화장하는 방이 있고, 화장하고 싶은 사람은 거기서 하면 되는데

파우더룸을 또 만든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내면 키우기보다 외모 가꾸기에 진력하는 사람이 많은 

이 나라에서, 당국이 그 풍조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것이지요.


이러다가는 달리는 지하철의 소음이 전화 통화에 방해가 되니 기차 안에서 통화하는 승객들을

위해 소음을 차단한 방을 만들어준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 사람들을 계도해야 하는데

오히려 시민의 세금으로 그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만든다니 참 기가 막힙니다.


얼마 전 지하철역의 수유시설이 형편 없이 오염돼 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기저귀교환대의 세균 오염 상태가 변기 안보다 훨씬 심하다고 합니다. (4월 21일 JTBC 밀착카메라) 


파우더룸을 만든다는 도시철도공사에 말하고 싶습니다.

시민을 위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파우더룸에 쓸 세금이 있으면 지하철역 수유시설이나 제대로 운영해주세요.


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지하철 기관사들은 다른 지하철 기관사들에 비해 

자살하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2003년 이후 9명이나 숨졌습니다.

지하철 기관사들의 '1인 근무제'를 개선해 기관사들의 자살을 막아주세요.

제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구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