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마트와 가난한 사람들(2016년 2월 5일)

divicom 2016. 2. 5. 08:12

입술 아래 붉은 딱지가 앉아 볼썽사납지만 억지로 떼어내면 안 됩니다. 다시 상처가 도지고 딱지가 앉는 과정이 

되풀이될 수 있으니까요.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는 건 여기에도 적용될 겁니다.


어젠 딱지를 단 채 동네를 벗어났습니다. 은평구에 볼 일이 있었습니다. 볼 일을 마치고는 바로 옆에 있는 이마트 

은평점에 들어갔습니다. 이왕 왔으니 장이나 보아가자는 마음이었습니다.


평일 오전인데도 사람이 많았습니다. 물론 물건은 사람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커다란 카트를 하나씩 밀며 유유자적 했습니다. 저와 비슷하거나 저보다 더 가난해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견물생심(心)'이라는 말도 있지만, 인간에게는 무엇을 보면 그것을 갖고 싶어 하게 되는 심리가 있는데, 그렇게 많은 물건 속에 있다 보면 갖고 싶은 것도 많아질 것 같았습니다. 가진 돈은 제한되어 있고 필요한 물건은 정해져 있지만, 물건 사이를 돌아다니다 보면 필요하지 않아도 사고 싶은 물건이 생기고, 살 수 없으면 좌절감을 느끼게 되겠지요. 


필요한 물건만 사고 그곳을 떠나고 싶은 사람도 '용건만 간단히' 할 수는 없었습니다. 층마다 물건의 종류가 달라 다른 물건을 사려면 다른 층으로 가야 하는데, 사람과 카트가 함께 타고 움직이는 무빙 워크(moving walk)에서는 앞지르기가 불가능하니 한 층 올라가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습니다. 이래저래 마트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불필요한 물건을 살 가능성은 높아지는 것이지요. 초대형 슈퍼마켓이 자본주의의 자식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물건값도 싼 것 같지 않았습니다. 공산품이 그나마 조금 쌌지만 그것도 많이 사야 표가 날 정도고, 저처럼 

소량을 사는 사람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채소와 과일이 특히 비싸 보였는데, 제가 잘못 본 것일지 모르나 대개는 제가 사는 동네의 작은 마트들보다 싸지 않았습니다. 동네에 없는 두 가지 물건을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겠습니다. 그곳은 저 같은 사람에겐 분수에 넘치는 곳이니까요.

제겐 그곳에서 쓸 돈도 없지만 그곳에서 낭비할 시간은 더더욱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사는 게 최선의 삶이라면 그곳은 제겐 자연스럽지 않은 곳, 

제 분수에 넘치는 부자들의 놀이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