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연히 동네에서 커피를 마시다 그 복장 그대로 덕수궁 뒤 시립미술관으로 갔습니다. 윤석남 선생의 평생
노고로 태어난 작품들을 보고 싶었습니다. 하필 점심 때라 그런지 미술관 안팎에 사람이 많고 전시회장에도
제법 관람객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작품을 볼 자격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결국 핸드폰을 들고
큰 소리로 통화하는 관객 하나에게 "나가서 통화하시면 안 될까요?" 하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은 '예술가는 지상에서 20센티미터 쯤 떠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다는데, 선생님의 작품을 보다 보니
선생님은 그냥 '떠 있는 사람'이 아니고, 시시각각을 꽉꽉 채우며 살아오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실' 그 자체라고나 할까요?
선생님은 적어도 그림을 그리겠다고 나선 마흔 살부터는, 전시회의 제목 '심장'처럼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작품을 생각하고 만들어 오신 것 같았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여성들, 이매창, 김만덕, 고정희... 선생님이
부활시킨 그분들을 만나니 반갑고도 안타까웠습니다.
4월 21일에 시작한 전시를 끝날 때가 되어서야 가본 게으름이 부끄러웠지만 이제라도 보았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월 28일에 끝나니 아직 가보지 못한 분들, 꼭 가 보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나서 미술관 1층의 아트숍으로 갔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을 담은 기념품을 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말만 아트숍이지 현재 진행 중인 전시와는 아무 상관없는 수입상품이 벽을 따라 전시되어 있고, 넓은 공간은
그냥 카페였습니다. 시립미술관이 수익을 내고 싶어 카페 운영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인지는 모르나, 미술관의
카페는 미술관에 온 관람객이 전시를 보고 그 여운을 음미하고 싶어서 들르는 곳이 되어야 하고, 아트숍 또한 전시를 본 사람이 전시의 기억을 간직하고 싶어 기념품을 사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곳은 그런 당위와는
아주 거리가 멀었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운영은 어찌 됐든, 윤석남 선생님의 전시회는 놓치면 안 됩니다.
한 사람의 성심이 무엇을 낳는가 보여주는 이 전시...
선생님과 제가 같은 한국인이라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선생님, 큰 거울이 되어 주시는 선생님, 부디 오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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