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전기요금 인하와 '박원순 따라 하기?'(2015년 6월 22일)

divicom 2015. 6. 22. 18:10

오늘은 '하지'입니다. 일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 그래서 그런지 여러 가지 일을 했는데도 아직 '낮'입니다.

일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겐 좋은 날이고 잠자고 싶어 하는 사람에겐 나쁜 날... 어떤 것을 좋아하는가, 좋아하지 않는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겠지요. 정부가 지난 일요일 특정사용계층의 전기요금을 여름 석 달 동안 내려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아하시나요,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일요일, 한 달에 301kWh~400kWh를 사용하는 가구들의 전기요금을 이번 여름 석 달 동안 한시적으로 내려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산업부는 이번 요금 인하로 전체 전기 사용 2200만 가구의 약 30%에 해당하는 647만 가구가 가구당 월 평균 8368원의 혜택을 보게 될 거라고 합니다.

 

요금이 인하된다니 무조건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조금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웃거릴 겁니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테니까요. 전기요금 내리는 게 뭐 그리 긴급한 사안이라고 일요일에 발표하며, 왜 하필 전기사용량이 급증하는 여름에 요금을 내려 전기사용을 부추기는지, 국민의 전기료 부담을 덜어주는 게 목적이라면 왜 빈곤층이나 소상공인(자영업자) 업소의 요금은 인하하지 않고 가장 많은 사용자가 속한 요금 구간의 요금을 내려주는지...

 

산업부는 "1구간부터 3구간까지는 이미 원가 이하로 전력이 공급되고 있어 이번 대책의 초점을 4구간에 맞췄다"고 밝혔지만, 돈이 없는 사람에겐 원가 이하를 내는 것도 부담입니다. 4구간에 3구간 요금을 적용해 주는 대신 빈곤층의 요금을 더 내려줄 수는 없을까요? 아무리 원가 이하라 해도 여름을 나려면 전기를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고 많이 사용하면 자연히 요금이 올라갈 테니까요.

 

이런 상황이니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이번 전기요금 인하를 의혹의 시선으로 보는 게 당연합니다. 뉴스토마토에 실린 기사를 보니 양이원영 사무처장은 "피크 전력 관리도 제대로 못하면서 전기요금을 낮추는 것은 최근 메르스 등으로 불신이 높아진 국민들에게서 인기를 얻기 위한 정책에 불과하다"고 평하고, "산술적인 계산으로 400kWh 정도의 전기를 사용하던 가정이 지불하던 전기세는 10만원 정도였고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는 전기 과소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고 합니다.

 

산업부와 한국전력이 일요일에 전격적으로전기요금 인하를 발표한 건 일종의 박원순 서울시장 따라 하기로 보입니다. 박 시장은 지난 4일 밤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삼성병원의사가 접촉한 1500여명에 대한 대책을 발표했는데, 그 후 박 시장의 인기가 급격히 상승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인기가 30%이하로 떨어지자 박 시장을 비판하던 정부가 오히려 그를 따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전기요금 인하는 메르스 관련 기자회견처럼 긴급을 요하는 사안이 아닙니다.

 

지난 13일 서울시는 오늘 27일부터 버스와 지하철요금을 인상한다고 발표했는데, 전기요금 인하는 어쩌면 서울시를 욕먹게 하려는 머리좋은 사람들의 꼼수인지도 모릅니다. 너희는 올리지만 우리는 내린다는 것이지요. ‘반가워야할요금 인하 소식을 듣고 반가워하기는커녕 의혹의 시선을 보내야 하니 이 나라에선 국민 노릇도 참 어렵습니다.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한여름에 전기요금을 내린다는 건 전기 사용량을 늘이겠다는 건데, 이건 세계적인 전기 소비 줄이기 추세에 어긋나는 뒷걸음질 정책입니다.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면 지금 있는 발전소로는 감당 못하니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야 한다고 하겠지요?

 

정부는 최근 고리 원전 1호기를 폐로하기로 결정했는데, 1500억 원을 들여 17 가지 원전 해체기술을 2021년까지 개발한 후 2030년까지 해체할 거라고 합니다. 해체 결정은 났지만 해체는 계획일 뿐입니다. 계획대로 될지는 알 수 없는 일, 정부는 이렇게 폐쇄가 어렵고 위험한 원자력발전소를 왜 그렇게 짓고 싶어 할까요? ‘부족한 전력 수요를 채우기 위해 새로 원전 2기를 추가로 건설하겠다는 내용의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을 지난 8일 국회에 내놓았으니,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보고도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전기요금과 관련해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대기업의 산업용 전력요금을 올려 전력 소비를 줄이는 것입니다. 지금은 1960년대도 1970년대도 아닙니다. 정부가 기업을 보호하고 특권을 주던 시대, 대기업의 성장이 국가의 성장으로 간주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정부는 늘 국민이 전기를 과용하는 것처럼 절전을 강조해왔지만 이 나라의 가정용 전력 소비량은 다른 나라들보다 낮습니다. 지난 2월에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가정용 전력 소비량은 2012년 기준 1278kWh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6위였으며, 한국 가정의 전력 소비량은 OECD 국가들의 가정 소비량 평균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정용, 산업용, 공공용, 상업용을 모두 합한 한국의 1인당 전력 소비량은 9628kWhOECD 국가 가운데 8위이고, OECD 평균(7407kWh)보다도 훨씬 많았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산업 중에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등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산업의 비중이 높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전력 소비에서 산업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52%, 가정용은 13%, 공공·상업용은 32%입니다.

 

더 놀라운 건 가정용 전기요금에만 누진세가 부과된다는 것입니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1974년 석유파동의 여파로 전기가 부족해지자 가정용 전기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되었고 2004년에 지금의 6단계로 강화되었으며, 6단계 요금은 1단계의 11.7배에 이르는데, 다른 나라에도 전기요금 누진제가 있지만 어느 나라도 우리처럼 심한 누진율을 적용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또 하나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전반적인 전기소비를 줄이는 것입니다. 요금 때문이 아니라 나라와 후손들을 위해, 지구를 위해 줄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원자력발전소를 많이 지어도 전기를 과용하면 전기는 늘 부족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산업체를 비롯한 모든 국민에게 알려 전기소비를 줄이는 게 정부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전기요금 몇 천 원 내린다고 정부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닙니다


참,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신다면 환경운동연합의 회원이 되어 전기소비 줄이기와 원전 건설 반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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