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6·29선언'이 발표된 지 28년 되는 날입니다. 1987년 6월 29일 당시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의 대표이며
대통령후보였던 노태우 씨가 내놓았던 선언으로, 노 후보는 그해 12월 전두환 씨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 선언은 이 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집권세력이 민주화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한 날로 기록되었고, 노 정권은
전두환 정권보다는 덜 무서웠지만 노태우 정부가 '민주 정부'였다고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노태우 대통령을 생각하면 1989년 봄 제가 연합통신 국제국에 들어갔던 때가 떠오릅니다. 입사하고 얼마 안 되어 정치 기사 해설을 써냈더니 부장이 저를 창가로 불러 말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을 싫어하나 봐요?"
"좋아하고 싫어하고.. 없습니다."
"기사를 보니 싫어하는 것 같은데요?"
기사의 논조가 반정부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장은 청와대가 그 기사를 싫어할 거라며, 연합통신에서 일하려면 친정부적으로 써야 한다는 걸 상세히, 미소 띤 얼굴로 설명했습니다. 연합통신, 지금의 연합뉴스는 1980년 말
전두환 씨의 '언론통폐합'으로 만들어진 조직입니다. 그때까지 가장 영향력 있었던 두 개의 통신사인 합동통신과
동양통신을 강제로 통합하여 연합통신을 만든 것이지요.
노태우 정부는 '6·29선언'이 획기적인 민주화조치였다고 주장했지만, 그 선언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그해 1월 14일에 있었던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과 박군의 사망이 촉발시킨 항쟁이 있었습니다. 특히 6월 10일에 열린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범국민대회'는 집권당의 대통령후보인 노태우 씨에게 큰 부담이 되었을 겁니다.
결국 노태우 후보는 6월 29일 ' 대통령직선제의 수용, 대통령선거법의 개정, 김대중의 사면복권 및 극소수를 제외한 시국관련사범의 석방, 국민기본권 신장, 언론자유 창달, 지방자치제의 실시와 대학의 자율화, 정당의 자유로운 활동 보장, 과감한 사회정화조치 등 8개항을 약속했습니다.(브리태니커사전)
그러니 '6·29선언'은 '민주화 선언'이라기보다는 국민의 힘이 집권세력 위에 있음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요즘 국회법 개정을 비롯한 청와대의 '전제주의적' 행보를 두고, 이 나라가 '민주'를 떠나 '군주'의 시대로 가고 있다고 탄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뒷걸음질치는 것은 정치인 몇 사람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하지 않는 국민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니까요.'6·29선언'은 바로 그것을 증명하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다시 돌아온 6월 29일,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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