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동향숙'과 '대학'(2015년 5월 29일)

divicom 2015. 5. 29. 18:27

'남도학숙'과 '탐라영재관' 학생들과 공부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남도학숙'은 전라남도 출신 유지들이 그 지방 출신으로 서울의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을 위해 설립, 운영하는 기숙사이고, '탐라영재관'은 제주도 출신 학생들을 위한 같은 성격의 '동향숙(同鄕宿)'입니다. 


숙박이 비싼 서울에서 지방 출신 학생들이 생활할 곳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정 지방 출신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는 생활비가 적게 들고 학생들을 '어른들의 감독 아래' 둘 수 있으며, 학생들로 하여금 고향을 잊지 못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게 과연 좋은 것인가, '대학생'이라는 정체에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곤 했습니다. 


어제 자유칼럼에서 보내준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님의 글을 읽으니 제가 꺼림칙하게 느꼈던 게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선의(善意)'가 꼭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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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가르기’를 조장하는 동향숙(同鄕宿)

2015.05.28


근래 우리 정치권에서 여당은 ‘親朴 대 非朴’으로 나뉘어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야당은 야당대로  ‘親盧 대 非盧’로 편 가르기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를 지켜봐야 하는 우리의 마음은 착잡하고 한편으론 역겹기도 합니다. 

‘편 가르기 정서’와 관련해 오래전 독일 대학에서 본 장면이 떠오릅니다. 1950~1960년대 독일 대학 강단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진풍경 중 하나는 얼굴에 흉한 상처를 입은 교수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전쟁 때 입은 상처려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안면 상처를 가진 교수가 한두 명이 아닌 데다 그 대부분이 원로 교수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1920~1930년대에 대학교를 다니며 청춘을 보낸 분들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동료 학우에게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저 교수 얼굴의 선명한 칼자국은 왠지 전쟁 때 입은 상처 같지 않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동료 학우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저 교수는 ‘학우회 소속 학생(Verbindungsstudent)’ 출신이야.”

古都 하이델베르크(Heidelberg)의 대학생 모습을 아주 로맨틱하게 다룬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을 오래전 봤을 때 대학생들이 칼을 들고 결투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교수의 상처도 결투 때문에 생긴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동료 학우의 대답은 “물론”이었습니다. (사진 참조: 학창시절 학생끼리 칼로 결투하다 얻은 상처자국)


그 후 넓은 의미에서 우리네 대학 동아리와 같은  ‘Verbindung (=Korporation)’이라는 조직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독일에서는 1950년대에 이미 결투 관행이 자취를 감추었지만 대다수 학생은 Verbindung이라는 조직 문화에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Verbindung은 같은 고장 출신 동문들이 재력을 모아 자기 고향에서 온 후배들에게 안락한 거처와 식음을 제공하는 순기능을 가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치정권하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Verbindungsstudent 출신이 적극 활동했다는 사실이 역사적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요컨대 전후의 反나치 정서 속에서 Verbindung은 자연스럽게 쇠퇴의 길로 접어든 것입니다. 그 결과 ‘끼리끼리 정서’와 거리를 두려는 사회 풍토가 자생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나치 독일의 反유대인 정서 또한 ‘편 가르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회적 성찰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독일 대학교의 기숙사가 모든 면에서 자유 개방적인 운영 원칙을 지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대학 기숙사가 혹시라도 ‘끼리끼리 정서’의 모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학창 시절 기숙사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과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고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필자는 얼마 전 국내 한 대중 매체에 실린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각 지방의 유지들이 설립한 ‘강원학사’, ‘경기도장학관’, ‘충북학사’, ‘서울장학숙’, ‘남도학숙’, ‘탐라영재관’이란 이름의 기숙사 이야기를 아름다운 미담으로 포장해 보도한 것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기사는 같은 마을, 같은 학교에서 올라온 동창끼리 같은 방을 쓰고 있다는 걸 긍정적으로 부각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실로 우리 사회의 눈높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아 어이가 없었습니다. 단언하건대 이는 결코 미화할 가치조차 없는 일입니다.

University의 어원은 ‘총체’, ‘넓은 사회’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Universitas입니다. 이를테면 그러한 세계관을 교육하는 기관이 바로 ‘University’인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선의의 주고받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회적 純기능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사회를 좀먹는 ‘편 가르기, 끼리끼리 정서’를 조장하지 않도록 꼼꼼히 챙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향숙(鄕宿)이라는 개념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기숙사 수용 인원의 일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타 지방 출신에게 배정하도록 하는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융합과 혼합의 아름다움’의 창조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동향 문화’가 왜곡되어 ‘끼리끼리 정서’, ‘편 가르기 정서’로 깊이 뿌리내린 작금의 상황에서 동향 기숙사가 이를 더욱 심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親朴, 非朴’ 또는 ‘親盧, 非盧’ 같은 편 가르기 내홍이 사라질 날을 간절한 마음으로 바랍니다. 이는 아마도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염원이기도 할 것입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