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교보문고에서 산 <A Day No Pigs Would die>를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외서코너의 '대폭 할인' 코너에서 만났습니다. 책의 뒤 표지에 붙은 가격표를 보니 2011년에는 10,560원에 판매되었으나 저는 2000원에 샀습니다. 그래도 횡재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보관을 잘못했는지 책 모서리가 전체적으로 낡고 앞 표지 오른쪽 위 모서리는 헤지기까지 했으니까요.
Robert Newton Peck의 이 소설을 집어 든 이유는 책 속지에 그가 아버지에게 쓴 헌사 때문입니다. "To my
father, Haven Peck... a quiet and gentle man whose work was killing pigs"라는 짧은 글... "내 아버지 헤이븐 펙에게 바친다 ... 돼지를 죽이는 일을 하던 조용하고 점잖은 분 ".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하는 수 없이 돼지를 죽이는 헤이븐 펙처럼, 우리 주변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며 식구를 먹여 살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은 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이 책은 소설 형식으로 쓰여 있지만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고 작가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지금 22쪽을 읽고 있는데, 주인공인 로버트가 이웃집 소를 위해 장한 일을 한 덕에 돼지 새끼 한 마리를 선물받고 좋아서 팔짝팔짝 뛰는 장면입니다.
저는 돼지고기보다 돼지를 좋아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돼지를 더 좋아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돼지를 좋아하게 된 것은 <천재 돼지 프란시스 베이컨>이라는 책을 번역하면서였습니다. 원제는 <A Pig Called Francis
Bacon>인데, 프란시스 베이컨은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살았던 철학자의 이름이기도 하고, 20세기 유명한 화가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이 책을 번역하며 베이컨과 함께 울고 웃던 일이 생각납니다.
읽고 있는 책 덕에 돼지 생각을 자주 하는데 하필 오늘 아침 자유칼럼에서 김수종 선배의 글 '치킨과 삼겹살의 본 모습'을 보내 주었습니다. <천재 돼지...>를 번역한 후 한동안 돼지고기를 먹지 않다가 체력보강을 이유로 다시 먹기 시작했는데, 이 글을 읽으니 치킨도 삼겹살도 먹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과 글을 안 읽는 시대가 되었다지만, 아직 글로써 식량을 삼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읽는 사람들에게 글과 책은 아주 강력한 자명종 같은 친구입니다. 김수종 선배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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