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젊은 친구가 보내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이틀 만에 다 읽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한 권, 두 권씩 읽던 옛날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늙어간다는 것은 무엇보다 '느려지는 것'입니다. 한참 읽다가
전에 읽은 책이라는 걸 깨닫고 다시 웃습니다. 늙어간다는 것은 희미해지는 것인가 봅니다.
<자기 앞의 생>은 반짝이는 별들이 가득한 우주와 같습니다. 십대 초반 주인공의 입을 빌어 지나가는 말처럼 던지는 문장들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그 문장 뒤에 숨은 깊은 슬픔과 허무와 연민은 제 얼굴보다 낯익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제겐 유독 맨 마지막 문장이 와닿습니다. 참, 에밀 아자르가 로맹가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건 아시지요?
95쪽: 주변에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148쪽: 나는 수차례 거울 앞에 서서 생이 나를 짓밟고 지나가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를 상상했다.
175쪽: 노인들은 겉으로는 보잘 것 없이 초라해 보여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치가 있다.
그들도 여러분이나 나와 똑같이 느끼는데 자신들이 더 이상 돈벌이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보다 더 민감하게 고통받는다. 그런데 자연은 야비한 악당이라서 그들을 야금야금 파먹어간다.
293쪽: 아무리 고생을 많이 했노라 자부해도 사람에겐 여전히 배워야 할 것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295-296쪽: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는 가능한 안락사가 왜 노인에게는 금지되어 있는지 말이다.
나는 식물인간으로 세계 기록을 세운 미국인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심한 고행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십자가에 십칠 년여를 매달려 있는 셈이니까. 더 이상 살아갈 능력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의
목구멍에 억지로 생을 넣어주는 것보다 구역질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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