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인터넷 동아일보에서 '애 키 작아도 운동 못해도 직업 가진 내 탓'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경력 단절을 두려워하며 집에서 일하는 사람과 아이 엄마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며 회사 생활을 하는 사람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오랜만에 '경단녀'와 '워킹맘'을 오가며 살아온 제 과거를 돌아보았습니다. 기사 속의 일하는 엄마들처럼 저도 늘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어린 아이를 두고 일하러 나가니 아이가 원만한 사람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죄의식을 느꼈습니다. 결론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지난 사십 년 동안 관찰한 바에 따르면, 엄마가 일하느라 아이와 놀아주지 못한다고 아이가 잘못 되는 일은 없습니다. 아이의 키가 작거나 운동을 못하는 것은 유전적 요인과 성격 때문이지 직업 가진 엄마의 탓이 아닙니다.
제가 첫 직장에 다닐 때의 일입니다. 어린이날 회사에서 가족 동반 야유회를 갔는데, 어떤 선배의 쌍둥이 딸들이 한두 살 위인 제 아이 — 당시 여섯 살쯤 된 사내아이- 를 열심히 쫓아다녔습니다. 물론 함께 놀자고 그런 것이지요. 본래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자신이 하기 싫은 것은 결코 하지 않던 제 아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두 여자 아이로부터 도망 다니다가 잡히기 직전 제 품으로 달려들어 울었습니다.
저는 그때 회사 동료, 선배들, 또 선배의 부인들과 담소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제 품으로 달려드는 걸 본 선배 부인 하나가 “엄마가 일하면 애들이 저러더라고”하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는 아이로 인해 가슴이 아픈데 그 부인의 말이 비수가 되어 상처에 꽂혔습니다. 그러자 다른 선배 부인이 말했습니다. “엄마가 일하는 것하고 애들하고 아무 상관없어요. 다 성격이에요. 난 아이가 셋인데 셋이 다 달라요. 이런 상황에서 우는 애도 있고 절대로 안 우는 애도 있어요.”
그 선배 부인의 말씀에 감사하면서도 괜히 나를 위로하느라 저렇게 말씀하시는 것 아닐까 긴가민가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주변을 관찰해보니 그 분 말씀이 맞았습니다. 오히려 엄마하고 온종일 함께 있는 아이 중에 잘 우는 아이가 많았습니다.
한국 사회는 누구나 알다시피 '퇴행 사회'입니다. 그러니까 1970년대에 제가 겪던 마음고생을 40년이 지난 지금 젊은 엄마들이 겪고 있는 겁니다. 이런 상황이니 아이를 낳으려는 사람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적은 게 당연하지요.
정부가 나라의 ‘퇴행’을 조장하면 시민이 할 일이 많아지고 삶이 힘들어집니다. 이민을 가려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걸 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계속 살 거라면 스스로를 강화해서 자기 삶이 ‘퇴행’하는 걸 막아야 합니다. 삶의 ‘퇴행’을 막는 데는 일이 중요하고, 일 하는 곳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실력입니다.
어떤 직장이든 ‘실력’이 있는 사람, 일을 잘하는 사람은 귀히 여깁니다. 실력 있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고 귀하게 여기지 않는 직장이라면 그만두어야 합니다. 세상에 직장이 그곳 하나가 아닙니다. 아무리 취직하기 힘든 세상이라 해도 실력 있는 사람에겐 갈 곳이 있습니다.
직장에 다니며 아이를 키울 때는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엄마의 일에 대해 설명해주는 게 좋습니다.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 엄마가 하는 일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건지 얘기해주는 것이지요. 아침에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아이와 헤어질 때, 엄마도 너와 하루 종일 놀고 싶지만 그러면 엄마가 일을 못하게 되고 그러면 엄마가 사회적 역할도 못하게 된다는 걸 차분히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너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너의 일은 노는 것이지만 엄마의 일은 이러저러한 것이다. 우리 각자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고 몇 시에 다시 만나자’라는 식으로 설명해주는 겁니다.
사람들은 ‘어린애가 뭘 안다고 설명을 해요?’하지만, 아이들은 다 압니다. 아직 말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까지도 설명하면 다 알아듣습니다. 아이는 ‘작은 사람’이지 ‘바보’가 아닙니다. 문제는 어른들입니다. ‘아이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지요.
엄마와 아이가 함께 있는 시간과 아이의 원만한 성장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샴쌍둥이 분리수술을 한 신경외과 의사 벤 카슨(Ben Carson)의 어머니는 싱글맘으로 세 가지 일을 하며 아이 둘을 훌륭히 키워냈습니다. 카슨의 자서전 <Gifted Hands>는 '우리 두 형제를 위해 희생하신 어머니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헌사로 시작합니다.
저는 워킹맘일 때도 있었고, ‘경단녀’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친구들 중에도 바깥일을 하는 사람들과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이를 잘 키우는 건 어디서 일하든 ‘열심히 일하는’ 어머니입니다. 실력 없이 바깥일을 하는 어머니, 집안에서 살림하는 건 편하게 사는 거라고 생각하는 어머니는, 아이를 잘 키우지도 못하고
자기 스스로도 존경받지 못합니다.
아이와 오랜 시간을 보냄으로써 오히려 아이의 발전을 가로막고 아이와 나쁜 관계를 갖는 어머니들도 적지 않습니다. 아이와 짧은 시간밖에 함께할 수 없어 오히려 아이의 발전에 기여하는 어머니도 많습니다. ‘경단녀’와 ‘워킹맘’들, 아이를 믿어주세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실력을 닦으세요. 엄마가 자신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면 아이도 두려워하고 불안해합니다. 한마디로, 두려워하면 지는 겁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졸전'(2015년 5월 3일) (0) | 2015.05.03 |
---|---|
유치와 영구치, 그리고 '무식한' 엄마들(2015년 5월 2일) (0) | 2015.05.02 |
적십자회비를 안 내는 이유(2015년 4월 30일) (0) | 2015.04.30 |
네팔 대지진과 정부 대응(2015년 4월 28일) (0) | 2015.04.28 |
언론사 인턴과 기자의 윤리(2015년 4월 25일) (0) | 2015.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