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적십자회비를 안 내는 이유(2015년 4월 30일)

divicom 2015. 4. 30. 09:31

소위 어른이 되어 독립한 후 적십자회비를 내지 않은 적은 없습니다. 적십자회비 고지서에는 '적십자회비는 국민여러분께서 자진해서 납부하시는 성금'이라고 나와 있지만 고지서가 날아오니 시민의 입장에서 '자진해서' 낸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그 동안엔 '자진해서' 내는 척 납부했습니다.

 

그렇지만 작년 10월 사업가 김성주 씨가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취임하는 걸 보니 적십자회비를 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도 아니고 장애인 세대주도 아니면서 적십자회비를 한 번도 낸 적이 없는 사람이 왜 적십자사 총재가 되는 건지, 아니 어떻게 적십자사 총재가 될 수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김성주 씨가 적십자사 총재로 재직하는 동안엔 적십자회비를 내지 않겠다고. 영수증에 기재된 모금기간까지 회비를 내지 않았더니 기간을 자꾸 늘려 지로고지서를 보내옵니다. 이번에 받은 고지서엔 '적십자회비 모금기간'이 5월 31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내지 않을 겁니다.

 

정치가 시민들의 박애활동에까지 스며들 때 시민들이 저항하는 방법은 그 활동단체를 돕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단체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을 생각해야지 라고 하는 건 잘못된 정치를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김성주 씨가 총재가 되어 적십자회비가 걷히지 않으면 그를 총재 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것입니다.

 

얼마 전 이 블로그에 '유니세프 후원을 그만두어야 할까'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유니세프 사무국 경험이 전무한 사람이 유니세프 사무총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글을 쓴 후 유니세프 후원을 그만두었습니다. 유니세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터무니없는 사람이 사무총장이 되어 후원자들이 줄어들면 그 사무총장이 그만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는 나라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러려니 하고 하던대로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시민불복종' 같은 단어는 거의 잊힌 것 같습니다. 오늘 발표된 선거결과가 그 증거이겠지요. 어떤 사람들은 '총재나 사무총장이 뭐가 중요하냐, 사람을 돕는 게 중요하지!'라고 자못 너그럽게 말합니다. 마치 남을 돕는 방법이 그것뿐인 것처럼. 이상한 목사나 주지가 있는 교회나 절에 다니면서 '목사(주지)가 뭐가 중요해, 예수님(부처님)이 중요하지'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나쁜 사람들이 태연하게 편히 사는 것이지요.  

 

저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저는 김성주 씨가 총재 노릇을 하는 한 적십자회비를 내지 않겠습니다. 제게는 8,000원이 있지만 김 총재의 적십자사에 낼 돈은 없으니까요. 그러니 대한적십자사에 부탁합니다. 제발 모금기간을 바꾼 고지서를 더 이상 보내지 말아주세요! '착한' 국민이 낸 적십자회비를 그런 일에 낭비하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