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는 보이지 않아도 오늘은 삼월 삼짇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입니다.
하늘은 푸르러도 바람이 차가워 그늘의 개나리와 진달래가 안쓰럽습니다.
저희 집 화분들은 아직 꽃보다 잎입니다. 제일 귀여운 것은 키가 50센티미터쯤 되는
은행나무입니다. 거리의 은행나무들은 아직 잎을 내기 전이지만 우리 은행이는
잎이 아기 손바닥만이나 합니다. 조금 있으면 어른 손바닥의 절반쯤 되게 커질 겁니다.
은행이를 보면 가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나도는 사람들 생각이 납니다. 때로는
아무리 자라도 하늘엔 닿을 수 없으니 옆으로 자라겠다는 건가, 혼자 미소 지을 때도 있습니다.
잎들이 열심히 자라는 베란다 한쪽이 환합니다. 주홍색 꽃잎을 한아름씩 피워낸
군자란 덕택입니다. 한 화분을 채우고도 남게 자랐기에 세 개의 화분에 나누어 주었더니
두 화분에서 세 개의 꽃대가 나와 화려한 꽃을 피웠습니다.
누가 지은 이름인지 몰라도 '군자란'은 참으로 그 꽃에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겨우내 추운 베란다 한쪽에서 소리 없이 지내다가 봄이 오니 또 소리 없이
저리도 환한 꽃등을 단 것입니다. 모름지기 군자라면 저와 같을 것입니다.
소리 없이 제 할 일을 하여 세상을 밝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봄 밤입니다.
꽃대를 내지 않은 군자란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른 친구들이 꽃을 피웠으니
그들이 박수 받는 동안 기다리겠다는 건지, 군자란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봄은 이래저래 생각을 부추기는 계절입니다. 고마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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