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33

데카르트의 유언 (2010년 5월 17일)

"나의 영혼이여, 그동안 오래도록 붙잡혀 있었구나. 이제 감옥에서 벗어날 때가, 이 짐스러운 육체에서 떠날 때가 되었다. 나의 영혼이여, 이 고통스러운 결별을 즐겁고 용기 있게 맞이하기를." -- 에서 인용. 프랑스의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는 평생 떠돌이꾼으로 서른여덟 번이나 주소지를 바꾸었으며, 죽은 후에도 시신이 수 차례의 여행과 가매장을 거쳐 1819년에야 생 제르멩 데 프레 성당 부속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 안장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보헤미아의 엘리자베스 공주 (참수당한 영국 국왕 찰스 1세의 조카딸)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으며, 두 사람은 지적인 면에서 대등했다고 합니다. 찰스 1세가 참형을 당했을 때 데카르트는 엘리..

오늘의 문장 2010.05.17

돌아다보면 문득 (2010년 2월 1일)

오후 2시 반, 지하철 3호선 기차 안입니다. 전등이 켜있어도 어두운 건 승객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합실도 그랬지만 승객은 대부분 50세 이상입니다. 아무리 평균 수명이 늘어났다 해도 50세가 넘은 사람에겐 꿈꿀 미래보다 ‘돌아다볼’ 과거가 길고, 알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지나간 시간이 남긴 피로가 짙습니다. 마침 객차와 객차 사이의 문이 열리며 초로의 남자가 들어옵니다. 문이 닫히기 전에 얼른 그이가 떠나온 칸으로 옮겨 탑니다. 칸은 달라도 풍경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앉아 있는 사람, 서 있는 사람, 모두 옆 칸 사람들을 옮겨놓은 듯합니다. 나이는 차이를 지우고 같음을 강조하는 유니폼입니다. 객차 양 끝의 ‘노약자 석’은 물론이고 가운데의 긴 의자들도 모두 노인들 차지입니다. 이제는..

자유칼럼 2010.02.01

제삿날 (2010년 1월 13일)

오늘은 제삿날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도 신경 쓸 것이 적지 않지만 돌아가신 분을 맞으려면 훨씬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영하 십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지만 문을 활짝 열어 청소를 하고 여기저기 묵은 때도 벗겨냅니다. 어제 장을 보았지만 오늘 한 번 더 나가야 합니다. 떡을 하지 못했으니 사러 가야 합니다. 나간 김에 두어 가지 더 사와야겠습니다. 여유 있는 살림은 아니지만 저 세상에서 이 세상까지 먼 길 오실 분을 생각하면 한 가지라도 더 장만해 상에 올리고 싶습니다. “제사? 쓸데없는 일이야. 귀신이 있어? 있다 해도, 와서 음식을 먹어? 귀신이 음식을 먹는다면 음식이 그대로 있을 리가 없잖아?” 똑똑한 친구가 힐난조로 하던 말이 떠오릅니다.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제사상에 올려놓은 음식은..

자유칼럼 2010.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