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

나의 어머니 (2009년 8월 21일)

divicom 2009. 12. 29. 19:13

올 들어 귀뚜라미 소리를 처음 들은 건 8월 17일 새벽입니다. 여름이 가는구나 가을이 오는구나, 진부한 깨달음인데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멀리 순환도로 위엔 여전히 자동차들이 달리고 있었습니다. 달리는 차의 번호와 운전자는 달라도 풍경은 1년 전, 2년 전과 마찬가지였습니다. 1년 후, 2년 후, 아니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후에도 풍경은 남을 겁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울며,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거짓말과 참말 사이를 오가다 죽어갈 겁니다.

죽음은 모두에게 찾아오고 구경꾼의 눈엔 다 같은 떠남이지만 이 세상에 같은 죽음은 없습니다. 죽음은 삶의 정화(精華)인데 같은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의 죽음은 내 거울입니다. 죽은 이의 생애가 타인의 삶에 끼친 영향, 그의 타계가 타인에게 일으키는 슬픔을 보면 오래된 질문의 답이 보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옳은가.

엊그제 세상을 떠난 김대중 선생이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써 보낸 옥중 서신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인생의 목표를 무엇이 되느냐 하는 것보다 어떻게 값있게 사느냐에 두어야 한다... 정상 도달은 경우에 따라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가 값있게 살려고 애쓴 일생이었다면 비록 운이 없어서 그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일생은 결코 실패도 불행도 아니다. 값있고 행복한 일생이었다고 할 것이다.”

하도 시비가 잦은 시절이라 전직 대통령을 ‘선생’이라 부른다고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국민의 ‘선생’ 노릇은 거의 평생에 걸쳐 했고 대통령직에 있은 건 겨우 5년이니 ‘선생’이라는 호칭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선생(先生)’은 뒤에 오는 학생 ‘앞에 선 학생’입니다. 저는 아직 김선생을 비난하고 폄하하는 사람들 중에 그보다 나은 ‘학생’을 보지 못했습니다.

늙고 젊은 사람들을 떠나보내며 인간의 위대함을 재는 척도는 총명이나 영리함보다는 따스함과 너그러움이구나, 깨달았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인간은 제 역사에서조차 배우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이니 타인의 삶, 즉 타인의 역사에서 배우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그래도 살아있다는 건 아직 나를 변화시킬 시간이 있다는 것, 살아있는 한 조금 더 따스하고 너그러워지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생각을 고착시켜 딱딱해지는 건 몸이 굳는 죽음 이후로 미루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니 제가 좋아하는 시가 떠오릅니다.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1920년에 어머니를 잃고 쓴 짧은 시 ‘나의 어머니’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에 묻었다.
꽃은 자라고 나비는 재주넘고...
그녀, 너무도 가벼워 땅을 누르지도 않았다.
이렇게 가벼워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이 시를 읽으면 언제나 가슴이 아프고 부끄럽습니다. 제 삶도 제겐 버거웠지만 아직 제 몸과 마음은 너무나 무거우니까요. 그건 오랫동안 저를 지배해온 허무주의의 잔재 탓이 큽니다. 죽음이 저기서 기다리고 있는데 목표를 세워놓고 전력 질주하는 게 이상하다고, 아니 천박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달리기 경주에서 늘 꼴찌를 해도 창피하지 않았습니다.

목표를 세우진 않겠지만 조금 더 열심히 살아보려 합니다. 죽음이 저기서 기다리고 있으니 무엇이 걱정인가, 마음을 다지겠습니다. 성공도 실패도 살아있는 사람들의 잣대이니 죽은 후 그들이 내 삶을 놓고 뭐라고 하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냥 제 마음에 떳떳하게 살려 합니다. 선생도 얘기했습니다. “양심에 충실하게 산다는 것은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유일한 길이다.” 김선생만큼은 아니어도 양심껏 살아볼 생각입니다.

이 글의 첫 문장을 쓴 지 나흘이 되어갑니다. 그간 세상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어디선 풍경이 조금씩 바뀌기도 했습니다. 저 또한 나흘 전의 제가 아닙니다. 제가 이곳에 있기 전에도 이곳을 다녀간 후에도 세상은 여전히 남아 사람들은 웃고 울다가 죽어갈 겁니다. 아니 사람이 모두 사라진들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의미 있는 건 오늘, 언제나 오늘뿐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