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33

사회장과 바디 팜(Body Farm) (2007년 8월 30일)

지난 토요일 도하 각 신문에는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사회장 공고”가 실렸습니다. “故 김준성 前부총리 이수그룹 명예회장 사회장 장의위원회 위원장 김수한” 이름으로 실린 광고에는 장의위원회 부위원장 여섯 분, 고문 열 분, 장의위원 마흔 세 분과 가족의 명단이 있었습니다. 사회장 공고와 별도로 실린 기사들을 보면 고인은 부총리, 사업가, 은행가, 소설가로 “폭넓은 삶”을 살았습니다. 장의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유명인들은 고인의 활약상을 지켜본 증인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기사를 읽다 보면 고인은 참 복도 많은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로선 흔치 않게 고등교육을 받았고 사업가로 은행가로 성공했습니다. 관운까지 있어 부총리를 역임한데다 노년이 이슥하도록 문청文靑으로 살았고 자식 농사도 잘 지었다고 합니다...

자유칼럼 2009.11.19

노래방 3호실 손님

▲혼자 노는 놀이터 ⓒ 김수자 글 김흥숙 그림 김수자 예닐곱 명이 촘촘히 앉던 노래방 3호실에 그녀 혼자 들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녀하고 그녀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그녀, 말하기 좋게 그녀 1, 그녀 2라고 할까요? 남편과 싸우고 나서 집을 나섰고 발길 가는 대로 걷다 보니 여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름은 노래방이지만 그녀가 이곳에 온 건 술 때문이겠지요. 사람 많은 술집에서 혼자 마시기가 쑥스러웠을 겁니다. “너무 오래 싸우지 않았어. 그동안의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야. 싸워야 할 일이 있어도 그이가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기 때문에, 그이의 누적된 피로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에 싸우지 않으려 했었지. 그렇지만 더는 참지 못하겠어. 돈 좀 벌어오면 다야?” “아니, 그게 아니야. 그를 사랑해서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