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밤새 비 내리고 난 새벽 회색 하늘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어서 저 하늘 아래를 걷고 싶었습니다. 손바닥 노트, 볼펜, 비상금이 든 카드 지갑 하나를 청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목 디스크엔 ‘빨리 걷기’가 명약이라기에 아침 일찍 홍제천변을 걷곤 했는데 그날은 하늘에 이끌려 더 일찍 나선 겁니다. 비 그친 세상에선 숲의 향기가 났습니다. 낡은 운동화에 날개가 달린 것 같았습니다. 성큼성큼 신나게 걸었습니다. 걷다 보니 작은 물고기의 비늘 같은 빗방울이 날렸지만 저는 가뭄 끝에 비를 만난 풀처럼 행복했습니다. 신나게 걸은 후엔 천변 바로 윗길에 있는 편의점 앞에 앉아 커피를 마셨습니다. 비는 자꾸 굵어지고 바람도 차가워졌지만, 진초록 차양 아래서 비바람 향기를 맡으며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