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일기 30: 아픔이 키우는 것(2020년 4월 21일)

저는 늘 빌빌해서인지 웬만큼 아파도 담담합니다.

대개의 증세는 낯익으니 대개 거기에 맞는 처치를 스스로 합니다.

며칠 남들처럼 살면 열이 오르고 온몸이 아픕니다.

그럴 때는 타이레놀을 먹고 누워서 쉽니다.

빠르면 하루 늦으면 삼사일 지나 회복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고열이 심하거나 알러지 증세가 극심해 병원에 실려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도 유머를 잃진 않습니다. 

나이 들어가며 열 나는 빈도가 잦아집니다.

원래 약한 체질이 노화하며 더 약해진 탓이겠지요. 

한때는 몸이 아프면 마음까지 울적해지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그러지 않습니다. '아픈 것은 몸인데 왜 마음까지

우울해지느냐, 그거 좀 웃기는 일 아니냐'하는 생각을 한 후로는

아픈 몸과 마음을 분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꽤 

많이 아플 때도 제가 얼마나 아픈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내가 좀 심하게 아파' 혹은 '아파 죽겠어' 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아파야 할까요? 제가 아직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심하게 아픈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겪는 것과 제가 겪는 것이 모두 '아픔'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표현된다는 게 저로선 영 미안합니다.

오래 전 아기를 낳던 때도 그랬습니다.

아기를 먼저 낳아본 사람들이 아픔에 대해 여러 가지로 얘기하는 걸 듣고 

분만실에 들어갔습니다. '이만큼 아프면 신음소리를 낼 정도로 아픈 것일까, 

아니면 더 아파야 낼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소리 한번 질러보지 못하고 아기를 낳았습니다.

고통에 담담하려 노력하는 저이지만 다른 사람이 아프면 걱정이 됩니다.

자주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프면 더 걱정입니다. 그에겐 아픔이 낯설 테고 

그만큼 더 견디기 힘들 테니까요. 제가 한때 그랬던 것처럼, 몸의 아픔이 

곧 마음의 우울로 이어질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통증과 불편이 

그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심할까봐 걱정될 때도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름 있는 병과 이름 없는 병을 상대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들의 아픔이 견딜만한 것이기를, '아픈 것은 몸이지 마음이

아니야'라며 웃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그 아픔으로 자신과, 동료 인간들에 대한 

사랑을 키우기를, 그리고 마침내 병과의 싸움에서 승리함으로써 그 병을 앓는 

다른 사람들에게 큰 힘을 주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