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 12

시월의 마지막 날, 그리고 에곤 실레 (2024년 10월 31일)

인간은 약한 존재일까요, 강한 존재일까요?지구의 기후를 바꾸는 존재이니, 인간 스스로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같으면 노랗고 붉은 단풍이 거리를 뒤덮을 때이지만, 올가을 가로수들은 푸르지도 붉지도않은 어정쩡한 모습입니다. 저 나무들이 저렇게된 건 바로 인간 때문입니다. 새삼 인간이 놀랍고,자연이 인간에게 복수하는 방식이 무섭습니다. 아름다운 단풍의 부재처럼,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즉 지구적 전염병도 자연의 복수를 보여줍니다.1918년에서 1920년까지 전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도그중 하나이겠지요.  겨우 28세에 시월의 마지막 날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오스트리아의 화가 에곤 실레 (Egon Schiele: 1890-1918)는 지구를 괴롭힌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복수 당한 ..

동행 2024.10.31

아기에겐 죄가 없다 (2024년 10월 28일)

커피를 좋아하지만 카페에 갈 때는 생각해야 합니다.커피값을 지불하고 휴식을 누릴 만큼 열심히 살았는가,열심히 일했는가.. 커피값이 비싼 카페에 갈 때는 싼 집에 갈 때보다 더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을 끝낸 후 카페에가서 맛있는 커피를 마실 때는 더 없이 행복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기분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부자에겐큰돈이 아니지만 제게는 큰돈을 내고 커피를 마시며책을 보는데, 아기띠를 멘 세 명의 엄마가 끊임없이 카페 안을 돌아다니며 아기를 얼렀기  때문입니다.  스타벅스처럼 큰 카페면 아기띠에 안은 아기를 어르는  엄마가 다섯쯤 돌아다녀도 괜찮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간 북카페는 테이블이 몇 개 안 되는 조그만 카페였습니다. 그 카페의 주인은 누구보다 아기와 어린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오늘은 완전..

동행 2024.10.28

군인의 짐 (2024년 10월 26일)

1909년 오늘은 안중근 의사 (1879-1910)가 중국하얼빈 역에서 일본의 초대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사살한 날이고, 1979년 오늘은박정희 전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사망한 날입니다. 이 아름다운 가을날이 품고 있는 피의 역사...군인이 등장하면 총이 등장하고 총이 나오면죽음이 잇따른다는 생각을 하니, 러시아에파병되었다는 북한군들, 1960년대 중반부터1970년대 초까지 베트남에 파병됐던 한국군이떠오릅니다.  미국 작가 팀 오브라이언 (Tim O'Brien: 1946~)은매칼리스터 칼리지를 우등으로 졸업했으나 곧바로 징집돼 베트남전에 파병됐습니다. 1970년 제대한 후전쟁을 고발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1978년 발표한소설 로  '베트남전을 다룬 최고의 소설'이라..

오늘의 문장 2024.10.26

오세훈 시장, 남대문시장 (2024년 10월 22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왜 보이는 것에 집착할까요?왜 오래된 것은 없애거나 바꿔야 한다고 생각할까요?그에게 어떤 내면의 허기가 있는 걸까요? 서울시가 남대문시장을 확 바꿀 거라니 기쁨보다불안이 엄습합니다. 그는 2007년 유서 깊은 동대문운동장을없애고 DDP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세우는 계획을세웠습니다.  DDP는 2014년에 완공됐지만, 이라크 출신의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 (Zaha Hadid)의  작품으로 유명할 뿐 동대문시장과 주변 상가들에게 새 숨을 불어넣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오 시장은 '디자인'을 추구하지만, 도시는 디자인만으로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동안 무수한 발자국이 찍힌 골목들, 풍상을 겪어 첨단빌딩들과 대조를 이루는 건물들,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며 묵묵히 나이 든..

동행 2024.10.22

<리처드 3세>: 친구 (2024년 10월 20일)

셰익스피어의 를 다 읽었습니다.'다 읽었다'는 건 말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한 번 읽어 보았다는 뜻일 뿐, 내용과 문장의 맛을음미하려면 다섯 번은 읽어야 할 겁니다. '한 번 읽고 말 책이면 아예 읽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요즘은 지면이 많은 만큼 '작가'도 많아 '한 번' 아니 '반 번' 읽는 것으로 충분한 책들이 양산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를 비롯한 괴테의 작품들은 읽고 또 읽어도 새로운 깨달음과 재미를 줍니다. 는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왕이 될수 있는 동생, 조카 등 주변 모든 혈족을 살해하는 주인공과 그의 교활한 언변 때문에 화가 나서 읽기를 멈춘 적이 여러 번이었습니다.   오늘 한국엔 왕이 없지만 권모술수와 잔인함으로 무장하고 권력의 최정상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은있습..

동행 2024.10.20

노년일기 233: 옹졸 백발 (2024년 10월 18일)

제가 얼마나 옹졸한 사람인지 어제, 그 가게에갈 때까지는 몰랐습니다. 그 집 물건을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보내곤 했고 어제도 주소 두 개를 적어 들고 갔습니다. 주인이 종이쪽지에 손으로 적은 주소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문자로 보내시지 적어 오셨네"하더니, 소리 내어 읽으며 주소를 확인했습니다.그 사람의 태도가 거슬렸지만 잠자코 대금을 지불하고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전화번호를 보니 조금 전에 본 가게 주인인데,문자에는 오직 '다음에는 글씨 좀  크게 부탁드립니다!'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표현은 '부탁드립니다!'였지만, 그 사람의 찌푸린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제 글씨가 심하게 작지도 않았을 뿐더러, 아까 제 앞에서 한 차례불평했던 사람이 문자까지 보내다..

동행 2024.10.18

돈! (2024년 10월 16일)

2024년 10월이나 셰익스피어가 를 쓴16세기 말이나, '돈' 없이 살기는 불가능하거나 지극히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은 수단일 뿐 '다'는 아닙니다.  일론 머스크의 경우에서 보듯, '돈'은 모험심을 북돋우는묘약 같은 것이지만, 가 보여 주듯 악행을부추기는 촉매이기도 합니다. 아래에 에 나오는 '돈' 관련 문장과, 지난 3일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통해 배달되 졸저 의  '돈' 관련 문장을 옮겨둡니다. 고도원 님, 감사합니다.  4.2 King Richard: Know'se thou not any whom currupting gold                      Would tempt unto a close exploit of death?Boy: My lord, I know a di..

동행 2024.10.16

마라탕과 마작 (2024년 10월 14일)

고등학교와 대학교 사이에 있던 밥집들과 떡볶이집들이 사라진 자리엔 마라탕집이 우후죽순처럼 생겼습니다. 오후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 ㅊ마라탕집은 늘 여학생들로 가득 차 또 하나의 교실 같습니다. 왜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마라탕을 좋아할까요?  주말이면 어린 자녀들이 젊은 부모의 손을 끌어 마라탕집으로 들어가는 걸 종종 봅니다. 저 어린이들은 왜 그렇게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할까요? 중국 쓰촨성에서 유래했다는 마라탕이 어쩌다한국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의 '최애' 음식이 된 걸까요? 어려서부터 저렇게 자극적인 음식을 자주 먹어도괜찮은 걸까요? 지난 주 집 근처 카페에서는 여자 고등학생 둘이마작을 두는 걸 보았습니다. 한 자리에 앉았지만대화는 없이 각기 스마트폰으로 마작을 두기에바빴습니다.  마작은 중국의 ..

동행 2024.10.14

부럽다, 한강 (2024년 10월 11일)

평생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고 살았는데, 소설가 한강 씨는참 부럽습니다. 그가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아서 부러운 게 아니라,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글만 쓰며 살 수 있었던 그의 환경이 부럽고상과 함께 주어지는 14억원의 부상이 부럽습니다.큰 박수로 한강 씨의 수상을 축하하며 아래에 경향신문 백승찬 선임기자의 관련 글을 옮겨둡니다.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2410102135001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원로 소설가 한승원씨다.한 작가는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이 벌어지기 몇 달 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이후 풍문여고를 거쳐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동행 2024.10.11

금일, 우천시, 시발점 (2024년 10월 9일)

'금일'이 금요일이 아니고 오늘이며, '우천시'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도시가 아니고 '비가 올 경우'라는 뜻이고, '시발점'이 '시발'이라는 거친 말이  들어간 욕이 아니고 출발점을 뜻하며,'중식'이 중국 음식을 뜻할 수도 있지만 대개의 공문서에서는 점심 식사를 뜻한다는 걸 안다면, 당신은 오늘 '한글날'을 공휴일로 즐길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각급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과 그들의 부모들 중엔 위에 열거된 단어들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사기꾼들이 종교를 팔며 예수님 부처님을 욕보이더니 이제 무식한 한국인들이 한국어와 한글, 세종대왕님을 욕보이고 있습니다.  오늘은 부끄러운 '한글날'. '성명'이 이름인 걸 모르는 학생들과'족보'가 '족발보쌈 세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두루 즐..

동행 2024.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