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 11

8월, 위엄 있고 인상적인 (2023년 7월 31일)

7월이 끝나는 것을 이렇게 반긴 적이 있을까요? 장군으로서, 정치가로서 적들을 물리치는 데 능해 결국 독재자로 군림했던 시저 (Julius Caesar: 100 BC-44 BC), 그의 이름을 딴 달이어서 그럴까요? 7월은 물과 열로 세계를 통치한 폭군이었습니다. 눈물과 화상으로 얼룩진 7월을 둘둘 말아 우주 멀리 던져버리고 싶습니다. 어제 저녁 대차게 내린 소나기는 남은 7월을 씻어내고 8월을 맞으려는 자연의 몸짓이었겠지요. 8월은 열 달로 구성되었던 로마의 달력에선 여섯 번째 달이어서 여섯 번째를 뜻하는 'Sextilis'로 불렸다고 합니다. 기원 전 700년쯤, 1월과 2월이 추가되어 열두 달이 되면서 여덟 번째 달이 되었고, 로마제국을 세워 초대 황제로 군림한 어거스트 (아우구스투스: Caesar..

나의 이야기 2023.07.31

노년일기 179: 생-로-병-병-병-병-사 (2023년 7월 29일)

생-로-병-사 (生老病死), 네 시기 중 '로'가 길어지며 '병'의 시간도 늘어납니다. 예순을 넘겨 살면 오래 살았다고 환갑 잔치를 했는데, 이젠 일흔을 넘겨도 막내 취급을 받는 일이 흔합니다. 병을 앓는 노인이 많아지며 '생로병병병병사'라는 말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죽었을 상태의 노인들이 의술과 의료의 발전 덕에 죽지 않고 삶과 죽음이 반반씩, 혹은 2 대 8이나 1 대 9로 구성된 나날을 보냅니다. 그런 상태로나마 살아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지요. '병병병병'의 기간엔 으레 병자의 진면목이 드러납니다. 큰병으로 수도 없이 고비를 넘기면서도 담담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훨씬 덜 고통스러운 것으로 알려진 병을 앓으면서도 끝없이 징징거려 주변을 괴롭히는 ..

나의 이야기 2023.07.29

졸부들의 합창 (2023년 7월 27일)

한 동네에 오래 살면 동네를 닮는 걸까요? 오래된 동네의 주민들은 대개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옷으로 얘기하면 헌옷 같은 것이지요. 집에서 멀지 않은 오래된 동네를 '재개발'한 곳에 고층아파트 타운이 생기며, 본래 그 동네에 살던 사람들과는 좀 달라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새 동네의 주민들은 새옷 같아서 가만히 있어도 티가 나는데 덧붙여 티를 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입주한 아파트들의 값이 비싸기 때문에 그곳에 산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아파트들이 늘어나며 제 단골 카페에도 새로운 고객들이 늘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보다 목소리가 크다는 겁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애, 너 뭐 먹을래?" "난 아아!" 하고 외치는 식인데 카페에 자리잡은 후, 즉 카페가 조그맣..

동행 2023.07.27

양심의 소리 (2023년 7월 24일)

성공의 본래 뜻은 '목적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지만 요즘엔 '부자가 되는 것'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 혹은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성공'하지 못하는 건 남의 부러움을 사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까요? 수백 만 명의 유대인을 조직적으로 탄압하고 죽게 한 홀로코스트 (Holocaust: 1933-1945)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오스트리아 심리학자-정신의학자 빅토르 프랑클 (Viktor Frankl: 1905-1997)의 책 에서 '성공'의 다른 정의를 만났습니다. 1984년 판에 부친 서문에 나오는 글인데, 거기 나오는 '양심의 소리'라는 표현이 뭉클합니다. 2023년 한국에서 가장 잊힌 것이 있다면 바로 '양심'일 테니까요. 역자가 빅토르 프..

오늘의 문장 2023.07.24

노년일기 178: 두 가지 질문 (2023년 7월 21일)

지난 주 모임에서 한 친구가 토로했습니다. 이제는 이룰 것이 없어 살맛이 나지 않고 우울하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연했습니다. 제가 잘못 보았는지는 모르나 제가 보기에 그는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자신과 자녀들의 윤택한 생활을 성취, 보장했을 뿐 인생에 대해 모르기는 일곱 살 아이와 같으니까요... 그에게 무엇을 이루었느냐고 물으니 목표했던 것을 다 이뤘다고 말했습니다. 교수 노릇을 하다 은퇴했고 여러 개의 건물을 소유했으니 다 이룬 걸까요? 생각하기 전에 제 입이 묻는 소릴 들었습니다. "혹시 그 목표들이 너무 사소한 것들 아닌가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목표'를 얘기하는 사람이 많은 건 이 나라가 '목표' 지향 국가라 그럴까요? 지난 19일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KIAS)에 문을 연 허준..

나의 이야기 2023.07.21

노년일기 177: 노년의 적 1 (2023년 7월 18일)

'적 (敵)'은 '해를 끼치는 요소' 또는 '승부를 겨루는 상대편'을 뜻합니다. 공적으로 노년에 들어선 지금 저의 첫 번째 적은 저 자신입니다. 자고 일어나 옷을 갈아입는 순간부터 제가 저를 괴롭힙니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 때 오늘 입을 옷을 꺼내놓았어야 하는데 꺼내놓지 않아 짜증이 날 때가 있고, 옷을 벗고 입는 단순한 일을 수행하는 손이 둔해진 것을 느끼며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부엌에서 일하다 양파를 가지러 베란다에 가서는 베란다 빨랫줄의 빨래만 걷고 빈손으로 올 때가 있는가 하면, 빨래를 널다가 베란다가 지저분하다고 생각해 베란다를 청소한 후 판판하게 펼쳐 널어야지 하고 빨랫줄 한쪽에 걸쳐 놓았던 손수건을 그냥 두고 올 때도 있습니다. 오래 산 집인데도 집안에서 여기저기 부딪치고 조금만 오래 서서..

나의 이야기 2023.07.18

노년일기 176: 죽어라 살다가 (2023년 7월 15일)

전문적인 사기꾼이 아닌 한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상황을 반영합니다. 그러니 나이 들어가는 친구들이 모인 어제 점심 자리의 주제가 죽음이 될 수밖에 없었겠지요. 유월에 어머니를 잃은 친구, 며칠 전 아주버님과 사별한 친구, 남편이 아주 떠난 후 모임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두 선배들... 죽음은 이 오랜 친구 모임의 보이지 않는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가장 돈이 많은 친구는 언제나처럼 걱정이 많았습니다. 자신이 죽으면 들어가 누울 공원묘지의 묫자리를 사려는데 몇 인 분짜리를 사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친구들이 갖가지 답을 내놓았는데, 한마디로 정리하면 그건 남는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당신이 고민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그동안 자식들이 편히 살게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

동행 2023.07.15

노년일기 175: 배웅 (2023년 7월 10일)

어젠 아침 일찍 조계사에 갔습니다. 이 세상을 바꾸려 했던 한 사람이 저 세상으로 가는 길, 위로차 간 것입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3년, 대웅전과 마당에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1990년대 어느날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이미 세상에 대한 희망보다는 절망 쪽으로 기운 사람이었지만 희망과 낙관으로 진력하는 그는 감동적이었습니다. 가능한 한 그를 돕겠다 마음먹었고 그의 노력은 꽤 성공을 거두었으나 그 성공의 값은 그의 목숨이었습니다. 그를 좋은 세상으로 보내기 위한 염원과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먹구름을 끌어안고 있던 하늘이 모든 의식이 끝나자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눈물에 온몸을 적시며 떠돌다 돌아왔습니다. 배웅의 후유증은 허기와 무기력... 살구 다섯 개를 먹고 잉그..

나의 이야기 2023.07.10

교도소의 셰익스피어 (2023년 7월 8일)

오랜만에 단골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셰익스피어의 을 읽었습니다. 옆방에서 떠드는 손님들 --나갈 때 보니 겨우 두명!--과 창가의 손님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에도 불구하고 화내지 않고 웃을 수 있었던 건 셰익스피어 덕입니다. 셰익스피어 생각을 하니 며칠 전 자유칼럼이 보내준 권오숙 박사의 글이 떠오릅니다.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글... 교도소의 재소자들이 셰익스피어를 읽고 달라지듯 카페를 소음 공장으로 만드는 이들도 셰익스피어를 읽으면 달라질까요... 오늘 한국의 문학은 초입 난파의 풍경을 닮았지만 누군가는 문학의 본령을 살리려 인공호흡하듯 글을 쓰고 있을 겁니다. 그들을 응원하며 권 박사의 글을 옮겨둡니다. 링크를 클릭하면 자유칼럼으로 연결됩니다. http://www.freecol..

동행 2023.07.08

노년일기 174: 초콜릿 (2023년 7월 4일)

혈당이 떨어져 힘들 때 먹으라고 친구가 사준 초콜릿을 오래 먹지 않아 녹을 기미가 보일 때 앓아누웠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어려서 듣던 어른들의 얘기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 '입이 쓰다'는 말의 뜻도 마침내 알게 되었습니다. 입이 쓰니 먹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약을 먹어야 하니 뭔가를 먹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타일렀습니다. 평소에 먹지 않던 컵라면과 초코파이를 먹고 더위 탓에 물렁해진 초콜릿도 먹었습니다. 하나만 먹어야지 했는데 먹다 보니 한 봉을 다 먹었습니다. 초콜릿을 이렇게 많이 먹다니 바보가 되려는 건가, 아이가 되려는 건가... 며칠 앓고 일어나 초콜릿을 검색합니다. 네덜란드의 의학 저널에 실린 연구를 보니 초콜릿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인지력 쇠퇴를 예방하며, 심혈관계 위험을 ..

나의 이야기 2023.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