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 10

바람, 나의 바다 (2022년 6월 28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 바다, 그 바다가 오늘 제 창문으로 쑥 들어왔습니다. 시속 24.1 킬로미터 남서풍을 타고 온 겁니다. 창가에 서서 눈을 감습니다. 머리칼과 치마가 바람을 타고 얼굴과 몸을 휘감습니다. '타이타닉'의 뱃머리에 서 있는 기분입니다. 바람과 바람이 때로는 연인처럼 때로는 성난 아버지와 주눅든 아들처럼 낮고 높은 말을 주고받습니다. 바람이 바다를 옮기며 묻어 두었던 말을 쏟아내는 동안 새들은 침묵합니다. 예의를 모르는 건 사람뿐이니까요. 파도가 거세어지고 바람의 목소리가 거칠어집니다. 길을 방해하는 마천루들 때문이겠지요. 잠시 눈 뜨고 내려다보니 바쁜 택배 차들과 휴대전화에 잡힌 행인들, 영락없는 어제입니다. 멀리서 앰뷸런스의 사이렌이 울립니다. 누군가가 바다를 만나는..

나의 이야기 2022.06.28

그녀를 그리다 (2022년 6월 26일)

인숙이 떠난 지 9년, 저승의 시간은 이승의 시간보다 빨라 인숙은 버얼써 이곳을 잊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우리들의 사랑... 오이 향기 속에도 대파의 하양과 초록 속에도 있습니다. 내년 그녀의 10주기를 앞두고 그의 남편 박상천 시인이 아내를 그리고 기리는 시집을 냈습니다. . 인숙과 함께한 시간을 다 합해도 일년이 되지 않을 제가 이럴진대, 그와 근 30년을 함께 산 남편의 그리움은 어떨지... 짐작은 오만이겠지요... 박 시인의 시들 중 몇 구절을 옮겨 적으며 인숙을 그립니다. 말없음표는 문장의 생략을 뜻합니다. "마트에서 길을 잃다 ... 당신과 함께 장을 보러 가던 마트에 이젠 혼자 가게 되었습니다. ... 그러다가 문득 앞서가던 당신이 보이지 않아 난 갑자기 멍해지고 불안해집니다...

동행 2022.06.26

노년일기 125: 해후 (2022년 6월 23일)

살아 있어 좋은 점 한 가지는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남의 어머니는 기억, 어머니 덕에 이번 주엔 두 번이나 귀한 해후의 시간을 누렸습니다. 44년 만에 만난 신문사 후배는 그새 성공한 회사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가 우리 신문사에 견습기자로 들어와 머문 시간은 고작 6개월, 그때 함께 일했던 선배 중에 두 사람을 만나고 싶었는데 그 중 하나가 저라고 했습니다. 으리으리한 호텔 식당에서 아름답고 맛있는 밥을 먹고 그가 사준 고급 카스텔라를 들고 돌아오는데 참 기뻤습니다. 식당 창밖으로 보이는 북악도 아름다웠지만 출세가 바꾸지 못한 그 얼굴의 맑음이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사람에겐 아홉 개의 얼굴이 있다고 하고 저는 그의 얼굴 중 하나를 보았을 뿐이지만 그는 코끼리보다는 한라산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코..

나의 이야기 2022.06.23

00을 선택할 권리, 그리고 '청원' (2022년 6월 20일)

왜 제목에 '00'을 넣었냐고요? 그건 제목 때문에 이 글을 피하는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제목에 '죽음'이 들어간 글은 그렇지 않은 글보다 읽는 사람이 적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단어조차 싫어하나 보다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삶을 깊이 사랑하고 삶에 열중하다 보면 그렇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이 세상에는 살래야 살 수 없고, 죽음을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고 싶은 사람들의 권리에 대한 법률을 만들고 시행하는 것은 죽고 싶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원히 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러다보니 죽음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의 선택권은 허용되기 어렵습니다. 삶은 아이러니의 연속이지만 그 아이러니는 때로 너무나 잔인합니다. 아래 칼럼을..

동행 2022.06.20

교수를 위한 자리는 없다 (2022년 6월 17일)

대학을 죽이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 답이 있습니다. 교수 식당이 대학을 죽인다 한국의 대학 건물 중 괴물 같은 명칭은 단연 교수 식당 내지는 교직원 식당이다. 밥 먹을 때도 신분 직함을 따져 장소를 갈라놓았으니, 갈라치기의 원조 격이다. 한적한 교수 식당에 비해 학생 식당은 늘 많은 사람으로 긴 줄을 서야 한다. 허기를 달고 사는 학생들은 낮은 가격의 학생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서너 시간 뒤 시장기로 뒤틀린 창자의 교향곡을 들으며 공부하고 연구한다. 미국 대학에 오니, 교수나 학생 구분 없이 내가 먹고 싶은 음식에 줄만 서면 되었다. 먹는 장소의 차별이 신분에 따라, 그것도 지성을 대표한다는 대학에 버젓이 존재하는 나라였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저명인사 초청 세미나. 컵과 음식물에 엑스 표..

동행 2022.06.17

노년일기 124: 말하지 말고 (2022년 6월 14일)

첫 직장에서 만 12년을 보냈습니다. 그때 만난 사람들은 때로는 교사로서 때로는 반면교사로서 제게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 중에 실력 있는 선배가 있었습니다. 선배 기자로서는 존경스러웠지만 인간으로서는 존경할 수 없었습니다. 기사를 잘 못 쓰는 기자들을 꾸짖는 태도가 특히 거슬렸습니다. 잘못을 야단치는 데서 벗어나 '국민학교는 나왔냐?'는 식으로 인신공격을 했으니까요. 그 선배에게 늘 당하던 기자 하나가 갑자기 쓰러져 죽었을 때는 그 선배로 인해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해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선배에게는 일과 상관없어 보이는 여성들로부터 전화가 자주 왔습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회사로 전화가 왔고 그러면 제일 후배인 제가 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선배에 대한 존경심이 줄었습니..

나의 이야기 2022.06.14

누워야겠다 (2022년 6월 11일)

이 블로그에 고백한 대로 저는 셸 실버스틴 (Shel Silverstein)의 팬입니다. 그가 떠난 후에야 그를 알았으니 어리석은 팬이지요. 오늘은 그의 시 '서 있는 건 어리석어'를 읽으며 웃었지만, 시의 내용과 달리 다시 눕진 않았습니다. 이 시를 소개하는 것처럼, 앉아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으니까요. Standing Is Stupid Standing is stupid, Crawling's a curse, Skipping is silly, Walking is worse. Hopping is hopeless, Jumping's a chore, Sitting is senseless, Learning's a bore. Running's ridiculous, Jogging's insane-- Gues..

오늘의 문장 2022.06.11

자연의 선물, 사람의 선물 (2022년 6월 8일)

무안에서 아카시아꿀이 왔습니다. 은은하고 투명한 꿀을 들여다보자니 벌들의 분주한 날갯짓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꽃의 자당을 꿀벌이 먹었다 토해낸 것이 꿀이라니 저 꿀을 먹는 것은 꽃과 벌, 그들의 생生을 먹는 것이겠지요... 너무도 아름다워 차마 먹을 수가 없습니다. 꿀은 보관만 잘하면 아무리 오래두어도 변하지 않는다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고흥에서 마늘과 양파가 왔습니다. 재래종 마늘은 초롱초롱 똘똘한 어린이 같고 양파는 심지 굳은 청년처럼 단단합니다. 가을에 심어져 겨울을 난 양파와 마늘, 둘은 오래전부터 저를 맑히우는 친구입니다. 지도에서 무안과 고흥을 찾아봅니다. 무안은 함평과 목포 사이 서해안에 접해 있고 고흥은 저 남쪽 보성 아래 바다에 있습니다. 무안도 고흥도 가본 적이 없지만 그곳에서 오는 ..

나의 이야기 2022.06.08

노년일기 123: 사랑의 수명 (2022년 6월 5일)

아흔둘과 아흔셋 사이를 걷고 계신 어머니와 점심을 먹기 위해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몇 번 가고 나니 "여보세요?" 낯익은 음성이 들립니다. 반가움과 함께 슬픔이 밀려듭니다. 언젠가 이 번호에 전화를 걸어도 이 목소리가 안 들릴 때가 올 겁니다. 어머니 댁으로 차를 타고 가서 어머니를 태우고 식당으로 갑니다. 연희동의 중국식당을 고르신 어머니의 마음이 가는 길에 바뀝니다. "저기, 저 까만 건물에 있는 식당에 가자!" 고 하십니다. 늘 기다리는 손님들의 줄이 길다는데 오늘은 줄이 없습니다. "일요일엔 안 하는 거 아니에요?" 묵묵부답이신 걸 보니 보청기를 끼셨어도 들리지 않나 봅니다. 차에서 내려 입구로 가니 문이 잠겨 있습니다. 차는 이미 떠났으니 주변의 식당을 찾아 봐야 합니다. 다행히 어머니는 새로..

나의 이야기 2022.06.05

노년일기 122: 옛 친구 (2022년 6월 2일)

'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는 말이 있지만 오래된 친구가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젊은 시절엔 열심히 자신을 탐구하고 이웃에 도움되는 삶을 지향해 영감을 주던 친구가 나이들며 일신의 안락만을 좇아 실망을 주기도 하고, '이 나이에 무슨 책을 읽느냐'며 무지를 자랑하거나 '이제 칠십이 코앞이니 내 맘대로 편하게 살겠다'며 안하무인적으로 행동해 부끄럽게 만드는 일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오래 못 본 친구를 만날 때는 작은 선물과 함께 실망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합니다. 엊그제 삼십 여 년 전 한 직장에서 근무했던 친구를 만나러 나갈 때도 그랬습니다. 그동안 몇 년에 한 번씩 만났던 터라 그 친구의 변함없는 맑음을 알고 있었지만, 노년에 가까워지며 갑작스런 변화를 보인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친구..

나의 이야기 2022.06.02